비움의 궤적

김진석 Jin Suk Kim Solo Exhibition

전시제목
비움의 궤적
전시작가
김진석
전시일정
2026.07.14~07.19
공간주소
서울 종로구 윤보선길 28 2F
전화번호
02-3663-7537
홈페이지
www.42art.com
Yes-Maybes-No
종이위에 안료잉크, 76x56cm, 2025

Yes-Maybes-No 종이위에 안료잉크, 76x56cm, 2025

: 완벽주의에 대한 낙서적 처방


엔트로피 2

한지위에 안료잉크, 73x146cm, 2026



우린 모두 사라지고 자유의지는 없다
종이 위에 아크릴과 안료잉크, 73x146cm, 2023

작가 노트

비움의 궤적: 완벽주의에 대한 낙서적 처방 
나는 빈 종이가 무서웠다.
 하얗고 깨끗한 종이 앞에 서면 ’잘 그려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 찾아왔고, 그 생각은 곧 손을 멈추게 했다. 첫 선을 긋지 못한 채 하루가 지나는 날이 많았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구석에 처박혀 먼지를 뒤집어쓴 종이, 구겨지고 낡은 종이를 골라 쓰기 시작했다. 이미 망가 진 종이 위에서는 더 이상 망칠 것이 없었다. 그제야 비로소 펜이 자유로워졌다. 그림을 그릴 때 나는 철학이나 과학 강의를 틀어놓는 다. 머리가 복잡한 이야기를 쫓느라 바쁜 동안, 손은 제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렇게 그려야지’라는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하나 의 선이 그어지면 그 선이 알아서 다음 선을 부른다. 나는 이것을 ’무심한 끄적임 (Mindless Scribbling)’이라 부른다. 결과물은 계산 된 그림이 아니라, 그 순간의 에너지가 고스란히 남은 기록이다.
비어 있음이 가득 차 있다 
언뜻 보면 텅 빈 것처럼 보이는 화면 안에는 사실 수많은 것들이 들어 있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공(空)’이라 부른다.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가능성이 담겨 있는 상태. 나는 그 역설을 그리고 싶었다. ’잔혹한 공허(The Brutal Void)’ 작품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가까이 다가가면 무수한 작은 획들이 보인다. 한 발짝 물러서면 그 획들이 모여 하나의 풍경이 된다. 같은 그림인데 거리에 따라 전혀 다른 세계가 열린다. ‘발현(Emergence)’은 바로 이 경험 — 보는 깊이에 따라 새로운 질서가 나타나는 순간 — 을 담은 작업이다. 
우리는 모두 사라진다 
모든 것은 결국 흩어진다. 뜨거운 커피가 식고, 꽃이 지고, 별이 죽는 것처럼. 물리학에서는 이것을 엔트로피라 부른다. ‘우린 모두 사라진다(We All Disappear)’ 연작은 이 피할 수 없는 흐름을 그린다. 하지만 이것은 슬픈 이야기가 아니다. 사라지는 과정을 바라보는 일은, 오히려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것들이 얼마나 밀도 있는지를 깨닫게 해준다. 화면 위에서 유닛들은 흩어지고 떠다닌다. 그 궤적 자체가 존재의 흔적이다. 
질서가 깨지는 순간 
빈틈없이 정돈된 시스템에도 어딘가 균열은 있다. ‘오류(Glitch)’ 연작은 그 균열의 순간을 포착한다. 화면을 빼곡히 채운 작은 유닛 들은 완벽한 질서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충돌하고 겹치며 예상치 못한 틈을 만들어낸다. 유닛들은 캔버스 안에 머무르지 않고 액자 옆면까지 기어 나온다. 정해진 틀을 벗어나 현실로 번져 나오는 오류. 그것은 파괴일까, 아니면 새로운 시작일까. 
선택은 내가 한 것일까 
‘자유의지는 없다(There Is No Free Will)’ 연작에서 나는 RC카의 타이어 자국을 붓 대신 사용한다. 타이어가 지나간 길을 따라 유 닛을 배치하는 이 작업은, 우리의 선택이 정말 우리 것인지를 묻는다. 환경과 조건이 이미 길을 정해놓았다면, 그 위를 걷는 우리에게 자유의지란 무엇인가. 나는 작가로서의 주관적 판단을 최대한 내려놓고, 우연과 필연 사이 어딘가에 작업을 맡긴다. 
나에게 낙서는 완벽주의라는 감옥을 부수고 나아가는 가장 정직한 수행이다

낙서적 처방과 수행적 비움, 드로잉으로 그려낸 역설의 세계에 대하여

김진석 작가는 회화의 가장 원초적 형식인 드로잉 기법을 근간으로 하여 깊은 사유를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작업을 해오고 있다. 흔히 드로잉을 원초적이라고 지칭하는 이유는 드로잉(drawing)이라는 말의 어원이 무엇인가를 ‘끌어내다”, “당기다’라는 의미에서 왔고 이는 내적인 것들을 끌어내는 신체적 행위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페인팅(Painting)이 “색을 입히다”, “장식하다”라는 의미라는 의미에서 왔기에 조금은 인간 이성이 개입된 것으로 느껴지게 되고, 이는 이차적인 인간 행위에 가깝게 보인다면, 드로잉은 인간 이성보다는 신체 혹은 인간내면과 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에 드로잉은 인간의 내면과 신체로부터 무언가를 끌어내어 화지나 캔버스 위에 담아내고 채우는 행위를 연상시킨다. 그런데 김진석 작가는 이와 같은 드로잉 작업을 무엇인가를 담아내거나 채워 넣는 행위로 보기 보다는 거꾸로 ‘비움(Emptiness)’이라는 말로 바꿔 지칭하고 있다. 그가 그려낸 작업들을 볼 때 수많은 드로잉 흔적들이 남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음에도 작가가 이를 ‘비움(Emptiness)’, 혹은 ‘비움의 궤적(The Trajectory of Emptiness)’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사실 형용모순처럼 보이는 작가의 이와 같은 관점과 태도는 그의 작업에 대한 이해에 앞서 끝없는 질문들을 유발시킨다. 그러나 작가의 작업노트를 보게 되면 왜 작가가 이와 같은 명제를 작업에 앞서 내세우게 되었는가에 대해 일정한 실마리를 찾아내게 된다. 작가는 수많은 선들과 형태를 반복시키고 있는 작업을 보여주고 있으면서도 작업 노트의 첫 문장을 “나는 빈 종이가 무서웠다”라는 자기 고백을 하고 있다. 이는 작가가 이번 전시 주제와 연결하고 있는 부제가 “완벽주의에 대한 낙서적 처방”인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게 만드는 지점이다. 그림을 그리게 될 때 마다 깨끗한 흰 백지 앞에서 “잘 그려야 한다”는 생각을 떠 올릴 수 밖에 없었던 작가는 언제부터인가 어떤 무엇을 그리기 이전에 자기 치유적 작업, 자기 방어적 작업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작가는 작업을 하는 동안 철학이나 과학 강의를 틀어놓고 들으면서 작업을 한다고 하였다. 이는 머리가 복잡한 이야기를 쫓느라 바쁜 동안, 손은 제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무심한 끄적임(Mindless Scribbling)”이라고까지 부르게 되었다고 하는데, 작가는 계산된 그림이 아니라 순간의 에너지가 고스란히 기록되기를 원한다고 하였다. 작가는 이 부분을 “무심한 끄적임이고, 그저 순간의 에너지이며, 그렇기에 채워놓은 것 같지만 비어있음이 가득찬 역설과 공허”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작가가 말하는 역설도 공허도 그 자체가 인간이 마주하게 되는 어떤 대상은 아니라는 주지할 필요가 있다. 역설이라는 것은 그 자체가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모순적 상황을 드러내서 알지 못했던 진리나 의미를 발견하도록 만드는 사유의 장치이다. 공허 역시 일차적으로는 텅 비워져 있는 상태를 의미하지만 비움이라는 현상은 채움이라는 현상과의 연관성 속에서 이해될 수 밖에 없는 상대적 개념이다. 그렇다면 작가는 그의 작업에서 역설로부터, 공허로부터 과연 무엇을 그려내고자 한 것일까? 그의 작업 노트를 살펴보면 작가는 이 모호한 지점을 틈새, 균열이라고 말하고자 했던 것 같다. 작가는 균열을 완벽한 질서에서의 오류이고, 예상치 못한 틈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다고 말하면서 이를 `캔버스 안에 머무르지 않고 액자 옆면까지 기어 나오는 것에 함축해내고자 한다고 했다. 작가는 이 틈을 통해 창조와 파괴의 사이의 간극으로부터 오히려 작가가 작업 가운데 사유하게 되었던 질문들만을 지속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이나 이는 역설과 공허의 대칭점에 과연 무엇이 놓여 있는가에 대해 조명할 뿐임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작가는 화지와 캔버스 위에 수많은 행위의 흔적들을 쌓아 놓으면서 동시에 이를 비움의 궤적으로 이름 붙이고자 하였던 점을 다시 주시할 필요가 있다. 작업 가운데 수많은 행위의 흔적들을 중첩시켜 쌓아놓았기에 당연히 눈에 보이는 축적물들이 보일 수 밖에 없음에도 이에 대해 결코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려 하는 작가의 의지는 과거 빈 종이 앞에 무서웠지만 이후 모든 것들이 허물어져 있는 것과 같은 바로 그 지점에서 오히려 자유로움을 느끼게 되었던 독특한 경험이 변형되고 연장되어 여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일련의 작업 과정에서 쌓고 구축하는 행위의 흔적들이 삭제하고 소거하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는 깨달음에 이르도록 만들었던 것으로 보이며, 그래서 백색의 화지 앞에서의 공포를 무한한 가능성을 향해 끝없는 흔적들을 남겨놓는 수행과도 같은 작업이 될 수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드로잉은 텅 빈 백색 화지 공간과 신체 안에 가둬져 있는 내면 세계를 연결하는 신비로운 언어이다. 드로잉 작업은 불연속적으로 보이는 두 세계 사이에서 에너지의 흔적들을 교환하는 가운데 무엇인가를 가득 채우는 일이자 동시에 무엇인가를 모두 소거하는 도구가 되어 그 행위의 흔적과 그것의 실체에 대해 인식하도록 만드는 역설의 언어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보면 무심코 그려나가는 낙서와 같은 작업은 단순히 비워져 있던 백색의 화지를 채워나가는 작업만이 아니라 숨겨져 은폐되어 있었던 내면 세계를 또 다른 드로잉일 수 있는 비워가는 행위들의 궤적에 대한 기록이었음을 발견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또한 이와 같은 낙서적 처방은 완벽해야만 했고 가득 채워져 있어야만 했던 내면 세계에 균열을 가하는 행위가 되어 정해진 알고리즘의 틀에서 벗어나 현실을 각성케 하는 계기가 되고 있었다는 점도 함께 보여준다. 그런데 작가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이와 같은 현실 인식이 낙서와 같은 무의식적 행위의 연속 가운데 이뤄지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대해서도 특별히 주목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작가는 이를 통해 우연성이라는 토대 위에서 어떻게 자아의 필연성에 대해 논의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물리학자들은 이 세계가 불확정적이고 우연적으로 보이는 미시세계를 토대로 하여 거시세계의 질서의 세계, 필연적이고 확정적인 세계가 접붙임 되어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철학자 헤겔(G. W. F. Hegel)은 "우연적인 것은 그것이 존재한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필연성을 가진다. 왜냐하면 필연적인 것은 우연성을 통해 자기를 외화(外化)하며, 이 우연성 속에서 비로소 자기를 드러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필연은 본질의 질서이고 우연은 존재가 본질을 드러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외면적 현상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존재’, ‘있음’이란 우연과 필연의 긴장 속에서 의미를 획득하는 과정인 것이며 인간의 자아는 그러한 우연적 경험과 선택 속에서 형성될 수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김진석 작가는 드로잉이라는 우연과 필연이 교차되는 언어를 매개로 하여 낙서적 채움을 그리고 수행적 비움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작가가 그려낸 것들이 아무것도 그려내는 것이 아닐 수도 있고 수많은 가능성을 내포한 자아의 무한한 원천일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작업에서의 반복된 행위와 반복된 패턴은 자아를 획득하는 방법이자 자아를 비워내는 방법이 될 수 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이를 드로잉의 신체적 행위가 갖는 양가적 의미들을 반어적 방식으로 풀어내는 방식으로 관객들에게 전해주고 있다. 비움의 궤적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이승훈 (미술비평) 

작가약력

김 진 석Jin Suk Kim

학력

2008 (BA) Design Communication at Chelsea College of Arts in University of Arts London 
1999 명지대학교 화학공학과 학사

개인전

2026 ‘또다른 징글맞은 태양‘ 개인전, 갤러리반포대로5, 서울
2025 프라이빗 뷰, 4 Beech Grove, 뉴 몰든, 런던 
2023 ‘Pipe Dream’ 개인전, 델타하우스 갤러리, 런던

단체전

2024 존 러스킨 프라이즈 (The John Ruskin Prize): ‘Glitch’ 전시선정 
2024 델타 하우스 스튜디오 (Delta House Studios), 런던 윔블던: ‘Secret Studio Show’ 그룹전 
2023 웰스 아트 컨템포러리 (Wells Art Contemporary): ‘We All Disappear 2’ 전시선정
2023 델타 하우스 갤러리 (Delta House Gallery): ‘Pipe Dream’ 개인전 
2023 비주얼 아트 오픈 (Visual Art Open): ‘We All Disappear’ 본선후보 
2023 ING 디서닝 아이 (ING Discerning Eye): ‘Macro & Micro’와 ‘Entropy’ 전시선정 
2023 델타 하우스 스튜디오, 런던 윔블던: ‘Secret Studio Show 2023’ 그룹전
2022 트리니티 부이 워프 드로잉 프라이즈 (Trinity Buoy Wharf Drawing Prize): ‘The Brutal Void’ 본선 후보 
2020 영국 왕립 미술원 (RA) 섬머 엑시비션: ‘Emergence’ 전시선정 
2019 델타 하우스 오픈 스튜디오: 런던 윔블던 
2018 완즈워스 오픈 하우스 (Wandsworth Open House): 런던 
2016 델타 하우스 페스티벌 오브 아트: 런던 
2016 레딩 컨템포러리 아트 페어 (Reading Contemporary Art Fair): 레딩 
2016 타 하우스 스쿨 갤러리: ‘The Art Cooperative’ 그룹전, 런던 윔블던 
2014 라우드 & 웨스턴 (Loud & Western), 풀럼: ‘Art 50 Pop-up Show’, 런던 
2014 윔블던 아트 스튜디오 오픈 스튜디오 아트 쇼: 런던

작품

  • 엔트로피 2 — 한지위에 안료잉크, 73x146cm, 2026

  • 우린 모두 사라지고 자유의지는 없다 — 종이 위에 아크릴과 안료잉크, 73x146cm,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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