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ILENT SPIRE_Red #1
Oil on Canvas, 90.9x65.1cm, 2026

SILENT SPIRE_Red #2
Oil on Canvas, 90.9x72.7cm, 2026

도달할 수 없음의 구조
도망칠 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감각들이 있다. 그것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체질에 가깝다. 이번 《SILENT SPIRE》 연작은 이러한 감각을 제거하거나 정리하는 대신, 끝내 사라지지 않는 상태 그대로 견디고 통과시키는 방식에서 시작되었다.
《SILENT SPIRE》 연작에서 화면 위의 형상은 세워진 것이 아니라 떠오른 것이다. 제거되지 못한 감각의 잔여들은 거친 입자와 결로 남아 색면 위에 축적되고, 끝내 성채도 폐허도 아닌 어떤 수직의 흔적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도달의 대상이 아니라, 도달할 수 없음이 화면 안에서 스스로 밀어 올린 자취이다.
감각은 종종 과도하게 증폭되거나 왜곡된다. 빛이 결핍된 찰나를 포착한 사진처럼, 그것은 낮은 조도 照度 속에서 포착된 거칠고 불 완전한 입자들로 기록된다. 그러나 이러한 감각은 해상도를 낮춘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지워지지 않은 채 겹겹이 쌓이며, 화 면 위에서 또 다른 밀도와 깊이를 형성한다. 그렇게 떠오른 형상은 감각의 축적이 만들어낸 비물질적 잔상이다. 반복과 증식을 통해 윤곽을 얻지만, 그것은 완결된 실체라기보다 생성과 해체 사이에 머무는 잠정적인 상태에 가깝다.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면서도 언제 든 흐려질 듯 흔들리고, 떠오르면서도 완전히 자리 잡지 못한 채 색과 어둠의 경계에 머문다. 이 형상은 안식처나 도착지가 아니다. 그 것은 고정되지 않는 자아와 외부 세계가 충돌하며 남긴 흔적이며, 침묵 속에서 응축된 감정의 압력이 일시적으로 화면 위로 밀어 올 린 이미지이다. 화면 속 형상들은 실재와 비실재, 감각과 데이터, 생성과 소멸 사이를 오가며 끊임없이 상태를 바꾼다.
결국 《SILENT SPIRE》 연작은 완성된 형상에 도달하기 위한 시도가 아니다. 그것은 도달할 수 없음 속에서도 감각이 끊임없이 이미 지를 만들고, 흐트러뜨리고, 다시 떠오르게 하는 과정을 기록하는 일에 가깝다. 사라지지 않은 감각은 형태를 바꾸며 남고, 그 잔해는 다시 다음 화면을 밀어 올리는 동력으로 연소될 것이다.
2026년 작가노트
보 라 리 BoraLee
작가약력
주요 개인전
주요 단체전
작품
SILENT SPIRE_Red #1 — Oil on Canvas, 90.9x65.1cm, 2026
SILENT SPIRE_Red #2 — Oil on Canvas, 90.9x72.7cm, 202 6
SILENT SPIRE_Blue #2 — Oil on Canvas, 72.7x60.6cm, 20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