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화상 - 시간의 구조 속에서
펜 드로잉 (점묘), 종이, 53x75cm, 2026

현실과 환상, 그 사이의 창조
펜 드로잉 (점묘), 종이, 47x70cm, 2025

통제의 진화
펜 드로잉 (점묘), 종이, 53x75cm, 2025
작가노트
무한히 반복되는 사건 혹은 점, 그 사건과 점으로부터 다시 읽는 나와 세계에 대하여
이동섭 작가는 이번 전시를 “자화상 – 시간의 구조 속에서”라는 주제로 시작한다. 오랜 시간 작업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전시의 형태로 소통하기 보다는 작업을 내적 에너지의 축적 과정으로 삼아왔던 작가는 자신의 작업 담론과도 닮아 있는 작업 의 소통 방식에 변화를 주어 새롭게 관객들과 만나고 소통하는 장이자 새 출발점 과 같은 전시를 마련하게 된 것이다. 작가는 이 전시 과정을 통해 전시 주제인 ‘자화상’이라는 개념처럼 작가 자신을 돌아보고 시공간적 구조 속에서 현재의 순간 을 다시 읽기를 원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흥미로운 지점은 이번 전시작 속에 작가 자신의 외형을 직접적으로 재현한 ‘자화상’이 담겨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자화상’이라는 개념을 전면에 내세운 이유는 명확해 보인다. 인체를 포함한 다양한 사물을 수많은 점의 축적으로 치환하는 점묘 방식의 작업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선행적으로 암시하기 위해 이를 사용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즉, 작가는 ‘자화상’이라는 대리적 수사법을 통해 자신의 작업 담론이 지닌 의미망을 확장하고자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작가는 ‘자 화상’이 함축하는 작가의 실존적 모습과 자아의 이미지를 작업의 세부적인 의미 들과 연결하고자 하였음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작가가 구체적인 사물의 외형을 묘사하면서도, 훨씬 용이한 회화적 방식 대신 굳이 방대한 시간이 소요되는 점묘법을 고집하게 된 이유는 단순히 재현을 하고자 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대상을 하나의 점이자 하나의 ‘사건’으로 환원함으로써, 개별적인 점과 사건들이 저마다의 상징성을 획득하기를 원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다시 말해 작가가 자화상이라는 개념을 통해 표현하고자 한 것은 외형적 닮음이 아니라, 작가 자신과 연결되거나 내재된 본질적인 요소들이었던 것이다. 이는 가시적인 형상을 넘어 행위와 사건, 그리고 시간과 같은 과정적 요소 모두가 작업의 대상이 되고 있음 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구상 회화 작가들이 표상Representation의 연장선에 서 ‘대상을 어떻게 자신만의 스타일로 보여줄 것인가’에 몰두한다면, 이동섭 작가는 사물에 작가적 시선을 투사Projection하고 이를 사건으로 환원하며 그 과정에서 파생되는 상징성에 주목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특히 작가는 2차원 평면 회화의 특성이자 한계일 수 있는 ‘정지된 화면’에 담긴 구조적 의미에 대해 심층적으로 탐구하고자 하였던 점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통찰은 이동섭 작가의 작업을 심도 있게 읽어내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미학적 토대가 되고 있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은 저서 『창조적 진화』에서 “나의 정신 상태는 시간의 길 위를 전진하면서, 그것이 축적하는 지속과 함께 끊임없이 부풀어 오른다. 말하자면 그것은 스스로 커져 가는데, 자기 자신을 위해 끊임없이 구르면서 커지는 눈덩이와 같다.”라고 하였다. 이동섭 작가의 작업 또한 정지된 화면처럼 보이지만 여기에는 수없이 반복되는 점묘의 과정, 즉 ‘지속의 시간’ 속에서 베르그송이 언급한 눈덩이처럼 시간의 무게가 빚어낸 물리적 압력이 내재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그의 화면이 시간의 결정체이자 구조 그 자체로 해석되는 지점인 것이다. 작가는 보이지 않는 시간과 삶의 매 순간에 내재된 미지 의 힘, 그리고 변화의 계기를 점묘라는 물리적 행위를 통해 가시적 이미지의 세계 로 인출해낸다. 이는 보이지 않는 것을 번안해내는 작가만의 독창적인 수행 방식 이다. 수많은 시간의 겹이 쌓여 ‘지속의 덩어리’가 된 순간의 이미지들은 과거와 현재, 미래가 중첩되는 지점이자 시간의 구조를 통찰하게 하는 통로가 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러한 이미지가 단순히 관찰 대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를 바라보는 관객으로 하여금 시각 주체로서의 존재론적 위치를 자각하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작가가 언급한 “오랜 시간을 통과하며 형성되어 온 현재의 나”라는 표현은 바로 이 지점을 가리킨다. 이는 점묘라는 수행적 노동 속에서 마주하는 물리적 감각이자, 반복되는 점의 구조 속에 다층적 시간성이 현현顯現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러한 미학적 지점은 내재된 폭발적인 생명력이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 나가는 능동적 흐름인 베르그송의 ‘생명의 도약élan vital’ 개념과 유 기적으로 연결된다. 작가가 화면의 긴장감 속에 축적해낸 물리적 압력은 결국 존재의 창조적 발현을 낳는 동력이 된다. 이는 오랜 기억과 경험의 축적으로부터 발견한 시간의 구조 속에서, ‘지금, 여기’의 실존을 각성하게 만드는 지점이다. 결론 적으로 이동섭 작가에게 점이란 하나하나가 인고의 시간이자 통찰의 순간이었던 것이며, 과거의 마침표인 동시에 미래를 향한 창조적 도약의 계기가 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동섭 작가는 이미지의 환영이 감각되는 과정을 페인팅이나 드로잉 같은 연속성을 근거로 한 매체가 아닌, 불연속성이 확연히 드러나는 점묘 방식을 통해 구현한다. 역설적이게도 작가는 이러한 불연속적이고 한계적인 구조를 사용하면서도 이를 통해서는 불가능해 보이는 시공간적 방향에서 ‘연속성의 환영’을 경험하게 하며, 더 나아가 시간의 구조 속에서 인간이 경험하게 되는 존재론적 실상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직시하도록 만든다. 여기서 작가는 시공간적 구조 속 점들이 빚어 낸 환영적 대상으로부터 감각되는 에너지와 압력을 ‘자화상’이라는 개념으로 치환 하며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는 ‘존재란 과연 무엇이며, 우리는 이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에 대한 사유의 장을 마련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화면에 등장하는 동식물이나 자연물은 단순한 시각적 포착 대상의 위치를 넘어서게 된다. 그러므로 작가가 이들을 작업의 중심 소재로 삼고 상징적 맥락을 부여하여 화면에 배치한 것은, ‘자화상’이라는 개념과 마찬가지 로 작가적 시선을 투사하고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매개체로 삼고자 하였음을 의미 한다. 즉, 작가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존재의 위치를 탐색하여 하나의 상징 언어가 되도록 만드는 작업을 해왔던 것이다. 작가에게 사물 이미지는 곧 언어이자 상징 이다. 개별 사물은 점과 같이 분절된 개별 지점에 불과해 보일 수 있겠으나, 이 지점들이 시간성이라는 구조 안에서 상호작용할 때에는 일종의 상징적 체계가 되어 자아에 대한 현상적인 한 순간으로 명료하게 인식되게 됨을 의미한다. 물론 일각 에서는 이 모든 것이 결국 ‘일루전Illusion’에 불과하지 않느냐는 의문을 제기할 수 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현전Presence’을 경험하는 실제적인 현재의 단 면으로 작동하게 된다. 작가가 이를 ‘자화상’이라 지칭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점 하나하나, 혹은 사건 하나하나가 결합하고 축적되어 시간의 구조로 드러날 때, 그 것은 작가에게 부인할 수 없는 실재Reality가 되기 때문이다. 이동섭 작가는 이 실재로서의 세계, 그 경험의 장으로 관객을 초대하고 있다. ‘지금’ 그리고 ‘여기’라는 철학적 사유의 지점을 열어 보이며, 그 속에서 함께 감각하고 교감할 것을 권유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승훈 (미술비평)
작가약력
이 동 섭 Dongseob Lee
극사실 점묘 기법 Stippling을 기반으로, 시간의 축적과 구조 그리고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드로잉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초현실적 내러티브와 구조적 이미지를 결합하며 작업의 확장을 모색하고 있다.
학력
Sydney College of the Arts 시각디자인 전공
소속
한국펜화가협회 정회원
전시
2026 개인전 – 갤러리 AG7 (2026.3.25 – 3.30)
2025 한국펜화가협회 정기전 – 경인화랑
2024 한국펜화가협회 기획전 – 경인화랑
2024 개인초대전
수상
2024 한국보태니컬 공모전 우수상 (몬스테라)
2025 국제현대미술대전 동상銅賞, 파버카스텔 공모전 은상銀賞 (풍요의 열매)
2025 중앙일보 회화대전 특선 (현실과 환상, 그 사이의 창조)
작품
자화상 - 시간의 구조 속에서 — 펜 드로잉 (점묘), 종이, 53x75cm, 2026
현실과 환상, 그 사이의 창조 — 펜 드로잉 (점묘), 종이, 47x70cm, 2025
통제의 진화 — 펜 드로잉 (점묘), 종이, 53x75cm, 2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