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root
린넨에 혼합매체, 51x32cm, 2025

존재의 확장된 경계면으로서 집(Homeness) 혹은 땅과 흙 그리고 자연에 대하여
올로 작가는 이번 전시 주제를 집, 집, 집(House, Home, Homeness)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처럼 작가가 우리 말로는 동어반복일 수 있는 집이라는 단어에 대해 작가가 영어 표현을 부가하여 분리해서 사용한 것을 보면 작가는 집이라는 말에 담겨 있는 여러 개념들로부터 자신의 작업 담론을 이끌어내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작가는 그의 작가노트에서 자신의 작업 가운데 “집이란 하나의 철학적 사유이다”라고 하였고 “플라톤의 이데아 개념을 통해 집을 바라본다”라고도 하였다. 이를 보면 언젠가부터 작가에게는 ‘집’이라는 대상이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던 것으로 보이며 이 ‘집’이라는 것의 의미에 대해 작가가 이데아 개념을 차용하여 자신의 작업 의도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처럼 그 이상적 영역이자 본질적인 영역에 대해 사유하는 과정 자체가 자신의 작업의 일부분이 될 수 있다고 보았던 것 같다. 그러한 면에서 작업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이를 시각적으로 가시화 하는 것 역시 사유를 연장하는 것일 수 있다는 생각까지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작가는 자신의 회화 작업에서 집을 재현하기 보다는 ‘집의 근원적 형태를 좇는다’라고 하면서 그 감각만을 드러내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그의 작업을 살펴보게 되면 집의 형상뿐만 아니라 어떤 구체적인 사물의 형태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리고 색채에 있어서도 화려한 색보다는 무채색에 가까운 저채도 색으로 표현하는 가운데 색의 미세한 변화와 붓질에 의해 남겨진 질감만을 감각할 수 있을 정도의 흔적과 같은 표현들만이 남겨져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작가는 집의 원형에 대한 탐구가 시간과 장소, 그리고 재료의 문제로 연결되고 확장되면서 자연의 재료인 땅으로 이어지게 되었다고 하였다. 작가가 언급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보면 사실 작가는 회화적 방식에 의해 마치 땅 그 자체를 그려낸 것 같다는 느낌마저 든다. 작가에게 있어 이 땅이라는 것은 단지 재료로 사용되거나 회화의 소재로 차용된 것이 아니라 집의 본질로 다가왔던 것이고 그 땅으로부터 느껴지는 다양한 감각들이 그 본질적 영역에 대해 전해 주는 것으로 느끼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작가는 작업에서 집의 형상 보다는 재료를 통한 감각에 더 집중하게 되었던 것 같다. 일상 속에서 집을 보게 될 때 집은 일차적으로 건축물(House)로 다가오게 되지만 그 집에 대한 사유는 가정(Home)으로 옮겨가기 마련일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이 감각하게 된 집에 대해 말하면서 ‘Homeness’라는 신조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는 사전에 존재하는 단어가 아니지만 작가는 집의 이데아적 본질을 이 단어처럼 변경된 개념을 통해 지시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는 자신의 내면에 내재되어 있는 집의 이데아에 대해 자신만의 감각의 언어로 표시하고자 한 것이라고 본다. 그것은 건축물로서의 집처럼 소유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가정이라는 정서적이고 사회적인 관계만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기에 좀 더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차원에서 감각과 관련되어 있는 것들로부터 이를 찾아가는 가운데 작가는 집의 대리물일 수 있는 땅과 흙 등의 자연에 대해 주목하게 되었던 것이고 이로부터 ‘Homeness’라는 개념을 제안하게 되었던 것이다.
현대의 메를로 퐁티(Merleau-Ponty)나 들뢰즈(Gilles Deleuze)와 같은 철학자들은 인간이라는 존재를 규정하는 과정에서 주체와 타자의 물리적 경계면으로 인간의 몸을 언급하곤 하였다. 그런데 올로 작가의 작업과 일련의 사유과정을 살펴보게 되면 작가는 이를 집이라는 개념으로 대체하고 여기에 연결되는 땅과 흙, 그리고 자연까지 그 맥락을 확장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작가의 관점에서는 주체적 존재인 ‘나’라는 존재가 기거하는 곳, 외부 세계에 대해 감각하는 곳은 몸이라기 보다는 이데아적 개념으로 바라보게 된 집의 개념에 더 가깝다고 보았던 것이며 작가에게 이는 땅이나 흙, 자연으로까지 확장될 수 있는 것으로 판단되었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자아가 외부 세계와 분리되기 이전의 원초적 거처이자 존재의 근원이 될 수 있는 것은 몸이나 집과 같은 형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땅이나 흙과 같은 본질적 의미의 자연 그 자체일는지 모른다. 작가는 몸이 변화하고 집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은 자연 속에 우리가 존재하고 있다 사실이며 인간은 영원한 그 자연 속에 존재하는 것이기에 몸이라는 경계면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집이라는 거처의 개념에 대해 말하면서도 몸이나 집과 같은 기존의 언어가 지시할 수 없는 세계에 대해, 그리고 자신이 감각하게 된 것들에 대해 ‘Homeness’라고 바꿔 말하고, 자신이 기거하고 있는 세계, 감각하고 있는 세계의 본질적인 부분들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감각이라는 것은 시시각각 변화하기 마련이고 그 형체도 그려내기 어려운 것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변화를 느끼고 상호작용하고 있는 주체를 포착하는 방법, 존재를 기록하는 방법이 바로 여기에 있음을 작가는 발견하게 되었던 것이며 그렇기에 작가는 마치 땅과 같고 흙과 같은 자연을 마주하며 느끼게 되었던 감각의 흔적들을 작업으로 남겨놓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승훈 (미술비평)
작가노트
작가약력
올 로OLOH
작품
the root — 린넨에 혼합매체, 51x32cm, 2025
unseen(불현) — 린넨에 아크릴, 52.5x36cm, 2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