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팀엔진
디지털 아트, 2023
생명
석고에 아크릴 채색, 실물 크기, 2015-2022

열린 문
목재에 아크릴 채색, 150x200cm, 2020-2023
Market St, San Francisco 2013
디지털 아트, 70x100cm, 2023
기둥
버려진 목재에 염료 채색, 240x80cm, 2020-2023
작가 노트
자연을 관찰하면서 만물 조형의 원리인 “흐름(Flux)과 응집(Cohesion)의 조화(Cosmos)”를 보았습니다.
물•흙•공기가 질료(Materia)가 되어 모든 자연물 및 생물의 다양한 형상을 이루는 섭리 그리고, 태어나 죽음 을 향해 살아가는 생명의 순리가 관찰된 것입니다. 그 조화가 이룬 완전한 아름다움의 결정체는 “생명(Life)” 이었습니다. 에너지로 충만한 질료의 흐름과 응집, 그에 의한 질서와 조화가 순환하는 ‘생명의 신비’입니다.
미술사를 살폈더니 사람이 일구는 문명에도 동일한 원리가 생동하고 있었습니다.
철학•기하학•신학의 각각은 이성과 논리로 개념 정의를 하거나, 자연 순리를 원리로 정립하며, 세계와 생명의 존재 의미를 제시하기도 하면서 서로 연동하는데, 공통 주제는 “세계와 생명의 기원 그리고 존재에 대한 탐구” 입니다. 즉 세 학문이 질료가 되어 흐름과 응집의 조화와 같은 “변증적 전환(Dialectical Leap/Aesthetic Breakthrough)”을 일구는 역사였습니다.
사례를 보면, 15C 피렌체 르네상스에 있는데 1415년 브루넬레스키의 '원근법 실험' 과 12년 뒤 마사초 (Masaccio)가 산타 마리아 노벨라 대성당 벽에 그린 '성삼위일체(The Trinity,1427)' 입니다. 그 미술사적 혁신은 기하학에서 기초하며, 신학적 생명의 의미를 묘사하고 또한, 인간 이성의 진보에 대한 철학적 상징이 됩니다. 즉, ‘평면에 공간을 구현한 기하학적 혁신에 이어진 여러 투시도법의 개발 그리고, 데카르트 좌표계 등장 의 토대가 되어 자연과 생명 관찰의 급진보를 이룬 변곡점인 것입니다. 또한 그에 멈추지 않고, 카메라 및 영상 애니메이션 기술의 기원이 되면서 관련 첨단 기술에 필요한 영감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이는 인류사 속 미술이 인간지성을 시각화 하는 기능을 수행한 것이며, 학문간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언어 로써 각종 혁신의 중심에 있어온 것입니다. 그러다 20C에 이르러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이 등장하 면서 ‘빛의 세계 즉, 디지털 가상 공간 (Virtual Space)’이 만들어졌습니다. 질량이 없는 그 세계에서는 물리적 위험이나 한계에 매임없이 상상하는 모든 것을 프로그래밍 하고, 시뮬레이션 합니다. 그 과정에서 생산된 디지털 산물은 2D 및 3D 프린팅 기술을 통해 실물화 되며, 대량 복제에 의한 산업화에까지 이릅니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이 미리 통찰했듯, 지금의 ‘복제 기술’은 전통 예술작품의 아우라를 해체하고, 예술을 대중의 일상이 되게 하면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합니다. 그렇게 ‘21C의 창의적 혁신’은 미술이 아닌 과 학에서 실현되고 있습니다.
그러한 과도기 속 한 창작자의 체험은, ‘전통의 가치와 아우라가 과학에게 전이되는 역사를 목도하는 일'입니 다. 작가로서 연구하는 것은, ‘미술 영역에 있어야 할 변증적 전환을 일구기 위해 흐름과 응집의 순리를 돌아보 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술가로서의 활동은, “철학, 신학, 기하학이 관찰하는 자연과 생명의 의미를 여러 미술장르의 작품으 로 제작하면서 재조명하는 것” 입니다. 그런 창작은, 전통과 혁신의 조화를 모색하는 과정 즉, 우리가 숙련해 온 전통의 아우라를 첨단 기술력과 조화되게 하는 시도이며 다가오는 새 미술 경향을 탐색하는 노력입니다.
결국 내 창작의 궁극적 이상은, ‘흐름과 응집의 순리에서 발견한 미의 본질이자 혁신의 주체인 생명을 향한 것’ 이며, 그 것이 이끄는 길을 따라 ‘영원한 숭고(The Sublime)의 아름다움에 다가가는 것’입니다.
세계의 본질적 원리로서의 ‘흐름과 응집’ 혹은 ‘변화와
생성’이 의미하는 것에 대하여
최석돈 작가는 자연에 대해 깊은 고찰을 해오는 가운데 이를 토대로 하여 다양한 조형적 사유를 하게 되었고 이것이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여러 작업들을 하게 된 동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작가노트에 의하면 작가는 특히 자연에서 변화되고 생성되는 수많은 현상들을 관찰하게 되면서 이를 ‘’이라고 지칭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이처럼 상반되어 보이는 부분도 있고, 이어지는 부분도 있는 듯한 두 개념을 근거로 하여 이들의 ‘조화’가 바로 세상 만물의 원리일 수 있다는 것을 어느 순간 깨닫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신비롭고 아름다운 현상들의 결정체는 결국 ‘생명’일 수 있음을 발견하게 되면서 작가는 자신의 작업 전반의 공통 주제를 ‘세계와 생명의 기원’과 ‘존재에 대한 탐구’로 정하고 이 명제를 전제로 하여 여러 작업을 해왔음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최석돈 작가의 작업은 그 표현 형식이 시각적 차원에서 진행되는 조형 예술이자 조형적 표현으로 볼 수 있겠지만 그의 작업 전반은 ‘자연’에 대한 작가적 사유의 기록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으며 여기에는 작가가 이 모든 것의 결정체라고 표현한 것, 즉 ‘생명’에 대한 작가의 조형적 해석과 감각적 흔적들이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작가가 자연 혹은
생명에 대해 고찰하면서 이를 ‘흐름과 응집’이라는 개념을
통해 바라보고자 했던 것은 눈 앞의 세계, 즉 자연이라는 것에는 끊임없이 무엇인가 변화를 느끼도록 만드는
것들이 있지만 그곳에는 변화하는 것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 무엇인가 눈 앞에 새롭게 현현(顯現)하는 것들이 나타나기도 하고 그렇게 나타났던 것들이 어느 순간 사라진 것처럼 느껴지거나 변화 속에 다른 것으로
인식되기도 했던 작가 개인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본다. 인간에게 있어 ‘흐름’을 인식한다는 것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변화의 과정 자체를 인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변화’란 대상이나 상황, 상태 등이 달라진 것, 차이가 생긴 것을 의미하므로 작가는 그 ‘다름’과 ‘차이’를 만드는 근거를
‘응집’이라고 보았던 것이고 바로 이 ‘흐름과 응집’이라는 것, 이
두 현상의 조화가 세상의 원리이자 토대라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다. 이와 유사한 관점으로 철학자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가 세계를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생성되고 변화하는 ‘과정’으로 보았던 예가
있다. 그에게 있어 존재란 변화하는 사건들의 흐름 속에서 무엇인가 응집되는 현실적 계기였기에 이를 철학적
개념으로 제시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최석돈 작가의 작업 담론에는 화이트헤드의 과정과 생성의 담론과 일정
부분 닮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 부분들이 있다.
예를 들면 화이트헤드의 ‘되기(becoming)’의 철학은 존재의 본질이 변화와 차이에 있다고 보는 철학적 태도와 관련되어 있는데 이 변화와
차이를 인식하게 만드는 계기는 결국 변화, 즉 흐름 자체가 아니라 생성 혹은 사건으로서의 차이, 다시 말해 응집이라는 계기가 필요한 것이라는 점은 최석돈 작가의 작업 담론과 일맥상통한 부분인 것이다. 그렇기에 ‘흐름과 응집’의
개념을 제안한 최석돈 작가 역시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정 자체에 주목할 뿐만 아니라 특정 사건과 장면으로 응집되는 일정한 지점들에 시선을 모으도록 함으로써 이로부터 이 세계에 대해 동시적인
방식으로 통찰적 인식에 이르게 되는 일련의 과정들을 작업을 통해 보여주려 했던 것 같다. 작가는 이러한
작가적 관점을 형성하는 것에는 미술사를 비롯하여 철학, 기하학, 신학
등 여러 학문들을 살펴보는 과정이 필요하였다고 하는데 작가가 마주하게 된 역사의 흐름, 시간의 흐름
속에서 무엇인가 응집되면서 다가왔었던 수많은 사건들이 개별화된 파편들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작가에게 이것들은 단순히 분산된 변화의
흔적들이 아니라 그 하나하나가 순간이면서 동시에 영원성을 담아내는 숭고 혹은 아름다움에 대해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 중요한 계기로 다가왔었다는
것을 전시에서 보여주는 다양한 작업들은 충분히 유추해 볼 수 있도록 만들고 있다.
사실 ‘되기(becoming)’의 철학을 떠올리게 되면 먼저 들뢰즈(Gilles Deleuze)를 떠올리게 될 수도 있는데
들뢰즈의 철학은 작가가 제시한 ‘흐름과 응집’의 담론에서
응집보다는 흩어짐이나 탈영토화를 더 강조한다는 점에서 보면 최석돈 작가의 담론은 화이트헤드의 철학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화이트헤드는 존재를 흐름 속에서 응집되는 사건으로 보기 때문이며 이는 생성의 리듬으로부터의 떠오르는 존재의
현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보면 작가가 언급한 바와 같이 ‘흐름과 응집’이 만들어내는 조화는 다양한 가능성과 연계된 하나의 사건을
이어주는 신비롭고 창조적인 현상의 근거가 되며 과거의 존재를 흡수하여 새로운 존재로 이행하는 하나의 방식이 될 뿐만 아니라 이는 ‘되기’의 원천이자 모든 존재가 생성될 수 있는 조건과 토대가 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작가는 마치 우주의 모든 물질들이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변화 속에서 생명이 탄생하고 소멸하는 것을 반복하게 되는 것처럼 새로운 우주의 생멸을 무한히 반복하고 있는 것을 경험하는 장(場)을 작가는 자신의 작업 가운데 만들어내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작가에게는 바로 이곳이 존재를 확인하고 경험하는 장이자 예술로부터 우주와 세계의 본질에 다가서는 장이 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경험의 장을 이제 관객들에게 열어 보이며 함께 경험해 보도록
권하고자 하는 것 같다.
이승훈 (미술비평)
작가약력
최 석 돈Choi Seok-Don
학력
F2024 05~06, ‘카페 전시’ -강화도 내림 카페
2016 ‘Art Hive Exihibition’ & ‘Open Studio’
2013~2016 ‘AAU Spring Show’ – Annual Exhibitions
2002 홍익대 졸업 전시
1997, 1998 홍대 거리 미술전 -2회
이 메 일: seokdonchoi1974@gmail.com
tjrehs@naver.com
작품
스팀엔진 — 디지털 아트, 2023
생명 — 석고에 아크릴 채색, 실물 크기, 2015-2022
열린 문 — 목재에 아크릴 채색, 150x200cm, 2020-2023
Market St, San Francisco 2013 — 디지털 아트, 70x100cm, 2023
기둥 — 버려진 목재에 염료 채색, 240x80cm, 2020-20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