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ckle, tickle, tickle
Acrylic on canvas, 72.7x60.6cm, 2025
작가 노트
《데자뷰 왈츠 ∞》는 반복되는 감정의 흐름과 기억의 잔상을 회화적 리듬으로 풀어내, 익숙하지만 낯선 순간, ‘데자뷰’처럼 다가 오는 감정의 조각들을 중심에 두고, 감정과 기억을 시각 언어로 표현하고자 한다.
작품들은 얼핏 보면 풍경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구체적인 형상이 아닌 감정의 파장과 무의식의 흐름을 담은 추상적 회화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작품은 하나의 장면이 아니라 감정과 기억, 마음을 담은 시각적 서간(書簡)이다. 반복되는 기호, 여백의 떨 림, 선의 리듬은 말로 다하지 못한 감정을 대신 써 내려간 문장이고, 그 전체가 하나의 편지처럼 화면 위에 남아 있다.
작품은 일정한 형식 없이 흐르듯 이어지며, 반복되는 붓질과 기호, 색의 겹침을 통해 감정의 순환 구조를 드러낸다. 마치 느린 왈츠의 동작처럼, 감정은 하나의 형태에서 또 다른 형태로 천천히 변주되며 화면을 구성한다. 이는 감정이 내면에서 시작되어 시각적 기호로 표현되고, 다시 감상자에게 전달되며 새로운 감정의 리듬을 만들어내는, 끝없이 이어지는 무한(∞)의 순환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감정의 시각화와 기억과 무의식의 회화적 기호화를 아크릴, 유화, 템페라, 과슈, 오일 파스텔 등 다양한 재료로 편지를 쓰듯 그려진 작품을 100호부터 작은 소품까지 함께 전시된다. 작품 속 기호는 흘리고, 긁고, 겹쳐진 흐릿한 형상들로, 단순한 시각 요소가 아니라 감정의 진폭과 정서의 잔향을 상징하는 언어다. 이는 주관적인 감정이 어떻게 회화로 번역되고, 다시 타자에게 전달될 수 있는지를 실험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또한, 작품에는 서화용필동(書畵用筆同)과 기운생동(氣韻生動)과 같은 동양화 이론의 필법이 현대적으로 변주되어 녹아 있다. 이러한 조형적 원리는 감정의 흐름과 생기를 자연스럽게 화면에 드러내며, 작품 하나하나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유기적 질감을 지닌다.
그림 속 풍경은 실제의 장소가 아니라, 내면에 존재하는 정서적 풍경, 즉 감정의 지형이다. 그리고 그 풍경은 작가가 건네는 하나의 편지다. 관객은 이 편지를 읽는 이가 되어, 자신의 내면 기억 속 어딘가에 존재하는 감정과 조용히 마주하게 된다.
《데자뷰 왈츠 ∞》는 단절되지 않은 감정과 시간의 파편들이 예술 속에서 순환하고, 다시 감상자 안에서 회전하는 과정을 담아 낸다. 관람자는 이 전시를 통해, 마치 자기 자신의 오래된 기억 속을 유영하듯, 감정의 리듬을 따라 조용한 ‘무한의 왈츠’를 추게 될 것이다.
울림과 떨림이 가득한 회화, 그 변화와 차이의 세계에 대하여
이정은 작가는 인간 내면의 감정과 기억에 대해 고찰하는 가운데 이를 회화로 풀어내는 작업을 연구해왔다. 이와 관련하여 작가는 이번 전시 주제를 <데자뷰 왈츠 ∞>로 선택하고 있는데 그 이유에 대해 작가는 자신의 작가노트에서 “반복되는 감정의 파장 혹은 흐름”과 “기억, 특별히 무의식의 흐름”과 같은 영역을 탐색하고 이를 “시각 언어로 표현하게 된 것”과 관련된 생각 가운데 선택한 것이었음을 밝힌바 있다. 특히 작가는 감정에 대해 “하나의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천천히 변주된다.”라고 말하면서 <데자뷰 왈츠 ∞>는 “단절되지 않은 감정과 시간의 파편들 속에서 순환하며 감상자 안에서 회전하는 과정을 담아낸 것”이라고 말한다. 내면 속 감정의 흐름과 기억의 잔상에 대해 작가가 느끼게 된 것은 마치 지속적으로 변화하며 무한히 회전하며 반복되는 것처럼 느끼게 되는 왈츠 음악을 듣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데자뷰 왈츠 ∞>라는 주제는 니체(Friedrich Nietzsche)의 ‘영원회귀’의 정서와 이로부터의 도약하는 듯한 이미지를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작가가 말하는 반복은 단순히 같은 내용이 영원히 반복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왈츠 음악의 특징처럼 지속적인 변화와 차이가 매번 드러나는 반복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는 들뢰즈(Gilles Deleuze)의 <차이와 반복>에서 언급한 것처럼 차이가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상황, 즉 ‘생성적 리듬’의 음악과 같은 추상적 이미지를 환기시키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러한 이유 때문인지 이정은 작가가 그려낸 작업들을 살펴보면 일견 녹음이 우거진 자연을 마치 구상화를 그려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자세히 보면 볼수록 어느 하나 나무나 숲의 구체적 형태를 그린 것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작가는 끊임 없이 색과 선이 만나 어우러져 있는 화면을 통해 무엇인가 움직이고 변화하는 가운데 생성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과 정서들, 그 자체만을 화면에 담아 놓고자 했던 것 같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작가는 이를 ‘감정의 지형’이라고 하였다. 인간의 감정이란 언어나 문자로 제대로 기록할 수 없고 다른 사람에게 쉽게 전달하기도 어려운 것이지만 인간이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 때 그 감정에 녹아 있는 파동 혹은 진동은 상황에 따라 파장의 다양성으로 드러나거나, 진폭의 크기로 드러나기도 한다. 그래서 작가는 인간의 내적 감정과 정서를 세밀한 구상화나 정교한 언어같은 구체적 형태를 통해서는 표현할 수 없고 정확히 전달할 수 없는 것이지만 파동처럼, 진동처럼 명확한 형태가 없음에도 울려 퍼지는 힘이 있을 때에는, 그리고 그것이 흘러가게 될 때에는 공명의 지점, 공감의 지점에 다다를 수 있는 것이기에 이를 자신의 회화 작업에 담아내고자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작가는 왈츠의 느낌이 전해지는 변화의 언어, 차이의 언어로서의 울림과 떨림이 가득한 회화 작업을 수행하는 일에 탐닉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작가로서는 바로 이것이 생성의 에너지이자, 창조의 에너지가 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작가는 이와 같은 작업이 한 걸음 더 나아가 기억의 잔상 혹은 무의식의 흐름과도 연결될 수 있다고 보는 시각을 갖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뇌과학자들은 외부 정보가 감각되어 뇌로 전달될 때 뇌의 해마 부분에서 상호작용을 하여 감정적으로 각인되어 일종의 이름을 붙이게 되면 이는 장기 기억으로 전환되어 오래 기억에 남게 되고 그렇지 않은 정보들은 망각되거나 무의식에 남게 된다고 말한다. 그런데 불필요하여 망각되는 정보들과 달리 무의식에 남게 되는 감각 정보들은 인간의 감정과 관련이 없는 것이 아니라 감정적으로 너무 강렬하거나 억압된 욕망이나 부정하고 싶은 감정 같은 것들이기에 마치 망각된 다른 정보들처럼 무의식 영역에 잠재적 기억으로 남게 된다고 한다. 이때 이 기억들은 의식의 영역에 포착되지 않으나 어떤 계기에 의해 표출될 때에는 더욱 강렬하게 드러나게 되며 마치 데자뷰처럼 기억과 망각 사이에서의 혼란스러움을 강하게 느끼도록 만들수도 있기에 작가는 의식의 영역에 포착되는 감정과 정서뿐만 아니라 무의식 가운데 기억의 잔상처럼 남아있던 것들, 다시 말해 일종의 데자뷰처럼 인식되는 경험들과 감정의 미묘한 변화들, 그 차이들을 작업에 담아내기 위해 왈츠 풍의 가볍고 싱그러운 색채들을 사용하는 방식의 역설적 표현을 통해 언어나 문자로 표현하거나 전달할 수 없는 작가만의 작업 세계, 감정의 흐름 속에 담겨 있는 미묘한 변화와 차이의 세계를 회화 작업으로 선보이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작가에게는 움직이며 변화하고 차이를 만들어낸다는 것, 그 자체가 살아있음을 느끼고 감정을 느끼는 모든 것의 본질적 토대가 된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제 작가는 이번 전시의 작업들을 통해 그 변화와 차이를 느낄 수 있는 현장을 열어 놓고 여기에 관객들을 초대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승훈 (미술비평)
작가약력
이 정 은LEE JUNGEUN
개인전
2025 데자뷰 왈츠 ∞ / Deja Vu Waltz: INFINITY 초대전 갤러리 더플러스 9.23-29
2025 마음의 편지-INFINITY 미호박물관 선정작가 미호 갤러리 9.3-11.3
2025 흔적의 언어, 언어의 흔적 마포갤러리 6.19-27
2023 “너에게 편지를 쓰다“ 마포갤러리 10.11-16
2022 “그리스 100일여행”서울시민대학동남권 캠퍼스 선정작가 6.8-7.6
외 다수
그룹전
2025 33회 대한민국기독교미술대전 8.27-9.1 마루아트센터 특별관
2025 모든 아름다운 것들 중에 빛나다 아트미션 27회 정기전 답십리 아트랩 7.16-8.23
2025 서울아트페어 세택 5.15.-18
2025 라트기획전 공모선정 갤러리 은 (인사동) 2.12.-17
2024 마포 문화재단 <꿈의전시> 시각예술분야 선정 작가 마포아트센터 갤러리 맥 11.6-23
2024 그 여름 , 휴가지에 남겨진 것들 7.4-14 아트스토리자리기획공모전 선정작가
2024 ArtfestaEasycollecting선정작가 세텍 6.20-23
2021 2020 Athens open art - Art Number 23 갤러리, 그리스 아테네 21.10.22-28
외 다수
수상
2025 33, 32, 30회 대한민국기독교미술대전
2024 중앙회화대전
2023 제 45회 PCAF
작품
Tickle, tickle, tickle — Acrylic on canvas, 72.7x60.6cm, 2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