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ing, 9
캔버스 위 유채, 103x80cm, 2025
2023-scape, 36
캔버스 위 유채 , 60x129cm, 2025

thing, 12
-scape, 40작가노트
작업은 캔버스 제작에서부터 시작한다. 먼저 캔버스를 구성하는 세 요소-이미지, 표면, 지지대-를 유기적인 관계로 만들기 위해 지지대에서부터 제작을 시작한다. 지지대의 재료가 되는 목재는 단순한 재료가 아닌, 이미지와 유기적으로 관계하는 하나의 표현 요소로서 취급된다. 표면 또한 이미지에 적합한 재질의 천과 그에 따른 밑작업을 설정한다.
마찬가지로 이미지 또한 가장 기본적인 표현 방법을 통해 제작된다. 이미지를 구성하는 각각의 층들은 단순하고 일방향적인 붓칠의 반복과 균일하고 분명한 색채의 조합으로 구성된다. 각 층의 붓칠과 색채는 저마다의 정도, 속도감, 압력, 농도 등을 갖는다. 이처럼 각 층의 단순한 조형 요소들은 여러 층으로 겹쳐지며 유기적인 관계를 구성하게 되며, 결과적으로는 단순 하면서도 복잡하고, 분명하면서도 모호한 표현 방법을 갖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제작 과정과 이미지는 나로 하여금 일종의 ‘불완전성’을 감각하게 한다. 예를 들어, 이미지는 여러 층을 통해 채움의 과정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채우지 못했다는 결과를 여실히 드러낸다. 이처럼, 나의 삶과 캔버스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그것을 채울 수 없다는 ‘불완전성’의 공통 지점에서 만나고 있다. 이미지를 제작하며 끊임없이 감각하게 되는 ‘불완전성’은 때때로 그 목적이나 동기를 흐리게도 하지만, 동시에 분명하게도 한다. 마치 이미지의 그것처럼. 이 점에서, ‘불완전성’의 다른 한 편은 사라지는 듯하여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어떠한 것을 감각하게도 한다.
본 전시는 ‘뫼’라는 순 우리말을 주제로 한다. 우리는 우리 주변의 자연과 문화 저변에서도 고유하고 독보적인 가치를 찾아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다른 기준 하에서 그 가치를 망각하곤 한다. 어쩌면 우리의 것이 사라져갈 수도 있다는 암울한 지점에서, 나는 우리의 주변에서 언제나 마주하게 되는 산이라는 소재를 통해 고유한 문화와 아름다움의 일각을 찾아내고 싶다.
불완전성 혹은 차이로부터 읽어내는 대상 세계의 가치에 대하여
이유진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육면체 혹은 다면체로 보이는 불규칙한 형태의 입체를 쌓아 올린 듯한 이미지들을 화폭 전면에 그려내는 방식의 매우 독특한 느낌을 전해주는 회화 작업들을 선보이게 된다. 작가는 이 이미지들은 가장 기본적인 요소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변형-재생산’하여 제작하는 이미지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처럼 이미지들은 ‘변형-재생산’이라는 과정을 반복하는 가운데 제작되는 것이기에 수행과도 같은 정신 활동을 보이게 된다는 점을 부연한다. 그러나 작가는 기본적인 요소들을 변형하고 재생산하여 이 작업을 반복해 나가는 가운데 화면을 모두 채워내는 작업을 해오고 있음에도 작가가 이 일련의 작업에서 감각하게 되었던 것은 ‘완전성’이 아니라 ‘불완전성’ 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작가가 작업한 것은 입체 형태를 쌓아올린 이미지를 그려낸 것만이 아니라 캔버스의 지지대를 만들고, 캔버스의 표면 작업을 하며, 그리고 그 위에 페인팅 작업을 통해 입체 형태의 이미지를 쌓아 올린 형상은 하나의 상징적 이미지가 되고 있는 것이기에 모두가 하나의 유기체처럼 연결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처럼 완벽하게 쌓아 올리고자 한 모든 것들도 ‘완전성’이라는 정점은 결코 이르지 못하게 된다는 점만을 더 명확하게 확인시켜주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가장 기본적인 조형 요소로부터 가장 이상적인 상징의 이미지까지 연결시켜보고자 했던 의도는 결국 인간으로서, 그리고 작가로서 스스로가 ‘불완전성’에 대한 인식만 더 명료하게 확인하도록 만드는 기제가 되어버린 상황인 것이다.
그런데 작가가 마주하게 된 상황에는 들뢰즈가 그의 저서 <차이와 반복>에서 과거 전통 철학이 동일성과 재현을 중심으로 한 사유해왔던 점을 비판하면서 존재를 차이와 생성의 흐름으로 이해하고자 했던 것을 환기시키는 지점이 있다. 들뢰즈는 ‘차이’라는 것은 생성의 근본 원리라고 보았기에 억압되어서는 안되며 부수적인 것으로 보아서도 안된다고 말하였는데, 이때 ‘차이’라는 것은 ‘동일성’, ‘완전성’의 체계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므로 이유진 작가가 마주하게 되었던 ‘불완전성’이라는 지점 역시 ‘차이’를 발견하는 것과 같은 사유의 지평에 위치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고대 플라톤 철학에서 초월적 세계로서 이데아(idea) 뿐만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내재된 체계로서의 형상(form) 역시 ‘동일성’의 사유 방식으로부터 여기에 이어지는 ‘본질’ 혹은 ‘완전성’과 같은 이상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은 들뢰즈가 말하는 ‘차이의 반복’이 이뤄지는 체계와는 명확히 구별되며 이는 바꿔 말하면 ‘불완전성’에 대한 자각과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작가가 마주하게 된 바로 이 ‘불안전성’에 대한 자각은 ‘완전성’과 ‘동일성’의 체계의 고립에서 벗어나게 하는 ‘차이’의 발견이자 ‘생성’의 발견이 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작가로서 사유와 작업 방식에 있어 변환의 계기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작가가 자신의 사유 방식의 변화를 자신의 작업 방식 및 시각 방식의 변화로 연결시키고 있는 점에 드러나 있는 것으로 잘 드러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작가가 이번 전시 주제를 ‘뫼(山)’라고 지칭하게 된 것 역시 이러한 작가의 시각이 잘 드러나 있는 부분이라고 본다. 조형적인 면에서 가장 기본적 요소인 선과 면으로 이뤄져 있는 육면체나 다면체처럼 국토의 대부분이 산으로 둘러쌓인 한국에서 태어나 삶을 살아온 작가에게는 산이라는 것은 늘 주변에 있어왔던 한국적 삶의 토대이자 가장 기본적 요소로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그 기본이 되는 토대로부터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고 작업 초기에는 아마도 그 기본적인 요소들이 쌓이고 축적되면서 이상적 형상(form)을 그려내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생각 속에 산을 떠올릴 때 떠오르는 삼각형에 가까운 가장 기본적이면서 이상적인 형태의 산이 늘 우리 주변에 반복되어 펼쳐져 있는 것처럼 생각하게 되지만 사실 자세히 살펴보면 그 어느 것 하나 같은 것이 없고 모두 각기 다른 차이가 드러나기 마련이다. 이와 유사하게 작가는 작업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작업이 단순히 같은 형상을 반복해서 그리는 행위가 아니라 자신의 작업은 ‘변형’하는 행위였고 차이를 만들어내고 새로운 것들을 생성하는 작업을 반복한다는 의미에서의 ‘재생산’행위를 하는 것이었음을 어느 순간 깨닫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작가가 발견하게 된 ‘불완전성’이란 무한히 변화하는 자연 가운데 불가능한 목표로서 ‘완전성’에 대칭적 지점만리 아니라 무한한 변화의 전제 조건이자 우주적 존재의 생성 원리의 근거를 자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바로 그 차이를 발견하는 것이 ‘뫼(山)’처럼 늘 곁에 있고 삶의 토대가 되고 있음에도 그곳에서 찾아내지 못했던 주변의 대상들로부터 독보적 가치를 찾아낼 수 있는 길이 될 수 있을 것임을 고백하듯 선언하며 가장 기본적인 요소들을 조합하고 연결함으로써 이들의 유기적 관계로부터 차이를 발견하도록 만드는 작업을 반복해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승훈 (미술비평)
작가약력
이 유 진Lee Eujene
학력
개인전
단체전
작품
thing, 9 — 캔버스 위 유채, 103x80cm, 2025
2023 -scape, 36 — 캔버스 위 유채 , 60x129cm, 2025
thing, 8 — 캔버스 위 유채, 103x80cm, 2025
thing, 12 — 캔버스 위 유채, 103x70cm, 2025
thing, 10 — 캔버스 위 유채, 103x80cm, 2025
-scape, 40 — 캔버스 위 유채, 40x160cm, 2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