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d the Bunny Have Long Ears?


It’s not the real world
Mixed media on wood panel, 91x116cm, 2025

What A Good Space Trip needs임시적이며 대리적 상징 기표로서의 토끼 혹은 토끼의
이미지에 대하여
임정철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낙서화 경향의 자유분방하고
흥미로운 회화 작업들을 선보인다. 그런데 작가는 이러한 작업이 자신의 어떤 특정한 기억이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작업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망각에 관련되거나 매일 경험하는 과잉된 감각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그리고
작가는 이것이 디지털 매체 환경과 관련된 것으로 인식하면서 “정보는 넘치지만 본질은 흐릿해진다”는 지점에 주목하고 있다. 정보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정보량이 증가하면
불확실성(Entropy)은 증가하고 정보 전달력은 약화될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보면 디지털 매체시대, 정보화 시대에는 매체 발전으로 인해 정보의 속도와 양이 급속도로 증가함으로
인해 정보의 홍수 속에서 인간에게 있어 감각한다는 것, 인식한다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본질적인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고 있다. 어떤 대상이나 사건에 대해 감각하게 되었을 때 외부 세계에
대한 감각이 또 다른 외부 세계의 감각으로 빠르게 대체되어 감각한 내용을 인지하는 속도보다 빠른 상황이 일상화 되면서 주체적 인식보다는 외부 정보
자체에 종속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마저 드는 시대이다. 작가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순간순간 멈춰서
낙서하듯 임시적 기표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는 듯하다.
이와 관련하여 작가는 자신의 작업에 자주 등장하는 토끼가 “불확정성을 유지하는데 적합한 기호”라고 말하고 있다. 가장 구체적이지만 가장 불확실한 형상을 만드는데 적합하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가 제시한 ‘텅빈 기표(Empty Signifier)’의 기호 체계를 연상케 한다. ‘불확정성’이라는 말이 어떤 사건이나 결과에 대해 예측 불가능하고 가변적이며 실체에 대해 확인 불가능한 상황을 지칭하듯이 ‘텅빈 기표’라는 것 역시 특정한 기의를 가지지 않고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상징 기호로서의 기표를 말하는 것이고 구체적 실체가 없이 작동되는 상황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작가가 ‘토끼’라는 기표를 사용하게 된 맥락은 어떤 특정한 대상이나 의미를 지칭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불확정적이고 가변적인 상황, 다시 말해 텅빈 기표처럼 그 실체가 없는 기호 체계를 마주하는 시대를 살아가게 된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서 이 불확정적 기표 체계 자체를 각성적으로 바라보기 위해 임시적이고 대리적 상징을 선택한 것에 불과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즉 작가는 이 대리 상징을 지렛대 삼아 불확정적 세계를 담아내는 대안적 방법을 찾아내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는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가 정보화 시대에 떠도는 수많은 가상적 기표들을 ‘시뮬라크르 (Simulacrum)’라고 지칭한 것과도 닮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시뮬라크르가 모조품, 가짜 물건, 거짓 그림 등의 의미로부터 시작하여 실재를 대체하는 가상의 표로 기능하게 되었듯이 작가는 토끼를 비롯하여 비행접시, 눈동자, 얼굴 등을 과잉된 감각과 기억에서 밀려난 흐릿한 영역들에 대한 상징적이며 대리적인 기표로 사용하려 했던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것들이 특정 이야기나 대상을 가르키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디지털시대, 정보화 시대를 살아가는 상황에서 정보의 과잉, 감각의 과잉의 상황을 경험하게 되면서 작가는 이러한 상황 자체를 작업에 담아내는 방법을 찾고자 했던 것이고 그렇기에 지시할 수 없는 불확정적 상황들에 대한 대리적 기표를 선택하여 그의 작업에 가져오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때 흥미롭게 주목해 살펴보게 되는 지점은 작가가 이 기표들을 감각의 경험으로부터 읽어나가고자 한다는 부분과 그 대리적 기표를 감각의 영역 내에서 선택하고 있는 부분인 것 같다. 이 기표들은 기억 속 어떤 감각적 경험을 떠올리게 하는 기표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선행적으로 감각되어 인지된 기억 속 다른 기표들을 밀어내는 기표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새롭게 채색하는 기표 혹은 덧칠하는 기표이자 지우는 기표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속도감 있게 덧칠하고 지워지는 기표들은 그것의 기의를 인식하기도 전에 점멸하듯 덧칠하기와 지워지기의 과정이 반복됨으로 인해 그것을 인식하는 주체인 인간의 존재적 위치마저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지금 여기 이렇게 떠 있다”라는 표현을 하기도 했고, “나는 여전히 중심이 없는 상태”라는 말을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본다. 이는 정보의 과잉으로 인해 촉발된 과잉된 감각은 실체에 대한 인식을 초과하여 기표만을 소비하도록 만들었고 시뮬라크르의 세계 속에서 초과 현실(Hyperreality)만을 경험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작가는 실재로서의 기의는 사라지고 기표만이 부유하고 있는 세계, 불확정성만 점증하는 세계 속에서 실재를 은폐하는 도구인 시뮬라르크로서 토끼의 이미지와 여러 특징적 형상들을 차용하여 사용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인간이 대상을 보고 감각하여 인식하는 과정은 시간적으로 보면 순간적이고 공간적으로 보면 단면적이라고 할 수 있기에 시공간의 실체 전체를 완벽하게 감각하고 인지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시각적으로 감각한 모든 것들은 망막으로 감지한 빛으로 전해진 전기적 신호가 대뇌에서 구현해낸 일루젼에 불과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현실과 가상현실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디지털 매체 시대, 정보화 시대는 단지 이러한 실상을 더욱 뚜렷하게 인지하게 되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을 직시하게 되면서 오히려 작가는 그러한 이유로 토끼의 이미지가 필요했던 것이고 이 불확정적 세계를 유지하는 방법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중심이 없고, 본질이 없고, 실체 혹은 실재하는 것들에 대해 의심하게 된 상황에서 작가에게 있어 필요하게 된 것은 과거에 실재라고 믿게 만들었던 상징적 이미지들이었던 것이고 이것이 여전히 혹은 다시 필요하게 된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이승훈 (미술비평)
작가 노트
임시적이며 대리적 상징 기표로서의 토끼 혹은 토끼의 이미지에 대하여
임정철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낙서화 경향의 자유분방하고 흥미로운 회화 작업들을 선보인다. 그런데 작가는 이러한 작업이 자신의 어떤 특정한 기억이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작업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망각에 관련되거나 매일 경험하는 과잉된 감각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그리고 작가는 이것이 디지털 매체 환경과 관련된 것으로 인식하면서 “정보는 넘치지만 본질은 흐릿해진다”는 지점에 주목하고 있다. 정보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정보량이 증가하면 불확실성(Entropy)은 증가하고 정보 전달력은 약화될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보면 디지털 매체시대, 정보화 시대에는 매체 발전으로 인해 정보의 속도와 양이 급속도로 증가함으로 인해 정보의 홍수 속에서 인간에게 있어 감각한다는 것, 인식한다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본질적인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고 있다. 어떤 대상이나 사건에 대해 감각하게 되었을 때 외부 세계에 대한 감각이 또 다른 외부 세계의 감각으로 빠르게 대체되어 감각한 내용을 인지하는 속도보다 빠른 상황이 일상화 되면서 주체적 인식보다는 외부 정보 자체에 종속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마저 드는 시대이다. 작가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순간순간 멈춰서 낙서하듯 임시적 기표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는 듯하다.
이와 관련하여 작가는 자신의 작업에 자주 등장하는 토끼가 “불확정성을 유지하는데 적합한 기호”라고 말하고 있다. 가장 구체적이지만 가장 불확실한 형상을 만드는데 적합하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가 제시한 ‘텅빈 기표(Empty Signifier)’의 기호 체계를 연상케 한다. ‘불확정성’이라는 말이 어떤 사건이나 결과에 대해 예측 불가능하고 가변적이며 실체에 대해 확인 불가능한 상황을 지칭하듯이 ‘텅빈 기표’라는 것 역시 특정한 기의를 가지지 않고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상징 기호로서의 기표를 말하는 것이고 구체적 실체가 없이 작동되는 상황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작가가 ‘토끼’라는 기표를 사용하게 된 맥락은 어떤 특정한 대상이나 의미를 지칭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불확정적이고 가변적인 상황, 다시 말해 텅빈 기표처럼 그 실체가 없는 기호 체계를 마주하는 시대를 살아가게 된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서 이 불확정적 기표 체계 자체를 각성적으로 바라보기 위해 임시적이고 대리적 상징을 선택한 것에 불과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즉 작가는 이 대리 상징을 지렛대 삼아 불확정적 세계를 담아내는 대안적 방법을 찾아내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는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가 정보화 시대에 떠도는 수많은 가상적 기표들을 ‘시뮬라크르 (Simulacrum)’라고 지칭한 것과도 닮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시뮬라크르가 모조품, 가짜 물건, 거짓 그림 등의 의미로부터 시작하여 실재를 대체하는 가상의 표로 기능하게 되었듯이 작가는 토끼를 비롯하여 비행접시, 눈동자, 얼굴 등을 과잉된 감각과 기억에서 밀려난 흐릿한 영역들에 대한 상징적이며 대리적인 기표로 사용하려 했던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것들이 특정 이야기나 대상을 가르키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디지털시대, 정보화 시대를 살아가는 상황에서 정보의 과잉, 감각의 과잉의 상황을 경험하게 되면서 작가는 이러한 상황 자체를 작업에 담아내는 방법을 찾고자 했던 것이고 그렇기에 지시할 수 없는 불확정적 상황들에 대한 대리적 기표를 선택하여 그의 작업에 가져오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때 흥미롭게 주목해 살펴보게 되는 지점은 작가가 이 기표들을 감각의 경험으로부터 읽어나가고자 한다는 부분과 그 대리적 기표를 감각의 영역 내에서 선택하고 있는 부분인 것 같다. 이 기표들은 기억 속 어떤 감각적 경험을 떠올리게 하는 기표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선행적으로 감각되어 인지된 기억 속 다른 기표들을 밀어내는 기표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새롭게 채색하는 기표 혹은 덧칠하는 기표이자 지우는 기표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속도감 있게 덧칠하고 지워지는 기표들은 그것의 기의를 인식하기도 전에 점멸하듯 덧칠하기와 지워지기의 과정이 반복됨으로 인해 그것을 인식하는 주체인 인간의 존재적 위치마저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지금
여기 이렇게 떠 있다”라는 표현을 하기도 했고, “나는 여전히
중심이 없는 상태”라는 말을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본다. 이는
정보의 과잉으로 인해 촉발된 과잉된 감각은 실체에 대한 인식을 초과하여 기표만을 소비하도록 만들었고 시뮬라크르의 세계 속에서 초과 현실(Hyperreality)만을 경험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작가는 실재로서의 기의는 사라지고 기표만이 부유하고 있는 세계, 불확정성만 점증하는 세계
속에서 실재를 은폐하는 도구인 시뮬라르크로서 토끼의 이미지와 여러 특징적 형상들을 차용하여 사용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인간이 대상을 보고 감각하여 인식하는 과정은 시간적으로 보면 순간적이고 공간적으로 보면 단면적이라고 할
수 있기에 시공간의 실체 전체를 완벽하게 감각하고 인지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시각적으로 감각한 모든 것들은 망막으로 감지한 빛으로 전해진 전기적 신호가 대뇌에서 구현해낸 일루젼에 불과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현실과 가상현실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디지털 매체 시대, 정보화 시대는 단지 이러한 실상을 더욱 뚜렷하게
인지하게 되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을 직시하게 되면서 오히려 작가는 그러한 이유로 토끼의 이미지가
필요했던 것이고 이 불확정적 세계를 유지하는 방법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중심이 없고, 본질이 없고, 실체 혹은 실재하는 것들에 대해 의심하게 된 상황에서
작가에게 있어 필요하게 된 것은 과거에 실재라고 믿게 만들었던 상징적 이미지들이었던 것이고 이것이 여전히 혹은 다시 필요하게 된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이승훈 (미술비평)
작가약력
임 정 철Jung Cheol Lim
학력
개인전
단체전
작품
Bunny box 2 — Mixed media on canvas, 53x45.5cm, 2025
I t’s not the real world — Mixed media on wood panel, 91x116cm, 2025
Forever — Mixed media on canvas,130.6x130.6cm, 2024
What A Good Space Trip needs — Mixed media on canvas,60.6x72cm, 20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