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사이아트센터 특별기획전

강정헌 권순왕 김미로 김현정 보리윤 심철웅 이상은 이아영 이정은 전성아

전시제목
2025 사이아트센터 특별기획전
전시일정
2025.05.07~05.19
공간주소
서울 종로구 윤보선길 27 1F
전화번호
02-3663-7537
2025 사이아트센터 특별기획전
2025 CYART CENTER AI ART SPECIAL EXHIBITION
감각 언어로서의 프레인팅
IMAGE_TEXT_VOCABULARY
강정헌 권순왕 김미로 김현정 심철웅 보리윤 이상은 이아영 이정은 전성아
Kang, Jung hun / Qwon, Sunwang / Kim Miro / Hyun Jung Kim / Sim, Cheol Woong / BORI YOON / Sang Eun Lee / A Young Lee / Jeongeun Lee / Sung-Ah Jun
전시총괄기획자 이승훈 Lee Seung-hoon

       

전시주관 : 사이아트 & 갤러리 너트 공동기획 





이미지 혹은 감각 언어로부터의 시각적 소통 가능성과 한계에 대하여

감각 언어로서의 프레인팅展은 인간의 시각적 소통에 사용되는 다양한 기표들에 대해 탐색하기 위한 전시이다. 그런데 인간의 시각적 소통이라는 것은 외부 세계에 대해 눈으로 감각한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지만 감각한 것을 인지하여 반응하고 상호 작용하는 지점에 이르게 될 때 온전한 소통이 가능한 것이므로 이번 전시는 우선 이 감각이라는 지점을 좀 더 주목하며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전시 주제에서 감각언어개념을 덧붙여 감각 언어라는 표현을 사용하게 된 것은 감각으로부터 시작된 시각적 소통의 문제를 언어적 소통 체계 및 언어적 프로세스로 전환하여 탐색해 보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와 함께 감각 언어라는 개념을 권순왕 작가가 제안한 프레인팅’(prainting)이라는 용어를 차용하여 연결시킨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우선 이 단어가 ‘printing’‘painting’을 합성한 신조어(新造語)로서 기존의 회화 혹은 판화 등으로 구분되어 일컬어지는 예술 표현 영역으로부터 대안적, 확장적 창작 개념을 정초하고자 했던 의도로 만들어진 용어이기에 이러한 부분을 고려한 것이기도 하지만 프레인팅이라는 단어의 의미에는 시각적 소통에 있어 회화의 본질적 개념이라 할 수 있는 ‘2차원적 평면성판화매체의 본질적 개념이라 할 수 있는 복수성혹은 과정성과 같은 특성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개념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는 인간의 시각적 감각이나 인식 과정에 대한 문제로부터 예술의 본질이나 시각 예술의 소통 과정 전반에 이르기까지 여러 측면에서 의미 있는 시사점을 던져줄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인간의 감각과 인식, 그리고 소통의 프로세스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먼저 인간의 몸을 살펴보아도 어느 정도 가늠해 볼 수 있는 지점이 있다. 인간의 시각을 담당하는 감각기관인 안구의 내부에 사진기의 렌즈 역할을 하는 수정체와 함께 필름 역할을 하는 망막이 있는 것은 그 하나의 예일 것이다. 안구 속 망막은 빛으로 전달된 외부 세계의 정보를 변환하여 인간의 뇌에 전달하게 되는데 안구 크기에 따라 일정한 곡률이 있기에 일부 왜곡이 있고 외부 3차원 공간의 정보이기에 변형이 불가피 하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이 망막이라는 구조가 2차원의 이라는 점에서 보면 인간의 소통 방식이 왜 전통적으로 책을 비롯하여 회화와 같은 평면을 주된 매개체로 사용하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입체 형태의 실물이 기능하는 역할이 있겠으나 현대 사회를 보더라도 정보 소통의 영역에서 모니터나 핸드폰과 같은 매체를 주로 사용하는 보면 2차원의 평면을 통한 정보 전달력 및 소통 능력이 가장 강력하다는 것을 확인인하게 된다. 이는 인간의 시각 정보를 감각하고 수용하는 망막은 외부 세계의 정보를 2차원의 이미지형식으로 인식하고 이러한 감각을 기억으로 저장하는 기능을 한다. 물론 3차원적 환영을 대뇌에서 구현해내는 현상도 뒤따르게 되지만 망막은 3차원인 사물로서의 대상을 2차원적 이미지로 수렴시켜 변환하는 작용, 즉 대상과 닮은 이미지를 망막에 맺힌 상으로 맺히게 하는 것과 함께 대뇌에서도 이미지 형식으로 반복적으로 구현될 수 있게 함으로써 이미지가 어떻게 시각 영역의 소통에서 반복적으로 기능하게 되는지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번 전시에서 프레인팅이라는 용어를 차용하게 된 것 역시 그 용어 내에 함축되어 있는 평면성, 복수성, 과정성 등의 개념들을 통해 시각적 소통 및 그것의 프로세스에 대한 통찰적 지점을 짚어 볼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인간의 기술 발달에 따른 시각 매체 발달과 변천의 과정을 살펴보아도 인간이 사용하는 매체라는 것은 인간의 시각적 감각 및 인식 구조나 정보 전달과 소통의 프로세스와 그대로 닮아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인간 사회가 사용하는 매체뿐만 아니라 인간이 향유하는 예술 역시 인간의 기술 발달과 궤를 같이하기에 이와 같은 매체를 토대로 발전해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번 전시에서 인간이 사용하고 있는 매체들을 통해 이미지를 비롯한 기표적 역할을 탐색하면서 인간의 시각적 소통에 대해 고찰을 고찰하는 것은 예술에 대해 그리고 인간에 대해 알아가는 것에 있어서도 의미 있는 시도가 될 것이라고 본다. 이 과정에서 이번 전시가 기표에 대해 다루면서 ‘Image’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부제를 ‘IMAGE_TEXT_VOCABULARY’로 정함으로써 ‘TEXT_VOCABULARY’라는 개념과 연결 시킨 것은 ‘Image’라는 것 역시 일종의 언어 혹은 문자와 같은 기표 체계의 일부라는 시각을 전제하기 위해서이다. 물론 자연 가운데 실재하고 있는 모든 사물 자체를 기표라고 지칭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인간이 어떤 사물을 인식하고 해석하는 순간 그 모든 사물들은 ‘Image’로 지칭되는 기표 체계 내로 들어오게 된다. 그러므로 이번 전시는 우리가 시각을 통해 인식하는 세계, ‘Image’라는 것을 기표적 차원에서 다루는 가운데 이로부터 인식되는 세계가 갖는 의미를 탐색해 보고자 하는 것이며 동시에 인간과 세계를 매개하는 다양한 기표 체계 자체의 매체적 상황을 탐색하고자 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논의를 게슈탈트 심리학(Gestaltpsychologie)의 관점으로 보면 인간이 사물을 시각적으로 인식하는 과정에서 그것을 ‘Image’로 인식하게 된다는 말의 의미는 그 사물의 근접 이미지나 유사 이미지 혹은 최적화된 이미지에 의해 대리적으로 인식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본래 3차원 영역 내의 사물로서의 실체를 기의라고 한다면 ‘Image’라는 것은2차원의 대체된 이미지로서의 기표일 수 밖에 없으므로 인간은 본디 태어나면서부터 3차원의 물리적 세계 속에 실재(實在)하고 있는 것이지만 이는 어쩌면 동시에 ‘Image’ 혹은 2차원 평면의 차원에서 파생된 거대한 가상적 기표 체계 내에 존재하는 것일 수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보면 인간은 세계 속에 있으나 세계 그 자체를 그대로 경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세계 속의 사물과 관련된 기표로서의 세계를 경험하는 것일 뿐일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이 과정에서 처음으로 인식되는 사물로부터 비롯된 ‘Image’라는 것은 늘 직관적인 방식으로 해석되기 마련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 전시의 부제에서 ‘Image’와 수평적 위치에 직관적 기표와는 일정한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는 ‘Text’‘Vocabulary’와 같은 상징 기표를 연결시켜 개념적 연관성을 엿볼 수 있도록 한 것은 언어나 문자와 유사한 방식으로 ‘Image’ ‘읽기를 혹은 보기를 시도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어적 체계 내에서도 기표라는 것은 항상 기의를 대리한 그 무엇이기 때문에 기의자체가 될 수는 없음은 자명하다. 이와 같은 기표’, ‘기의의 관계에 대해 데리다(Jacques Derrida)는 의미가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미끄러지게 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차연(différance)이라는 개념을 제시한 바 있다. 이 역시 신조어로서 차이(difference)연기’(deferral)를 합성한 것인데 이에 관하여 데리다는 언어 및 기호가 작동할 때 의미는 기호들간의 차이에서 형성되지만 그 의미는 다음 기호로 미뤄지고 연기되며 완전한 지점에 도달하지 않는다는 관점을 제시하였다. 데리다의 시각은 기표기의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검토 하기를 원한 것이며 기존의 언어학적 체계의 해체(deconstruction)까지 요청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기표기의의 관계를 의미라는 차원에서 보면 기호적 관계 속에서 어느 정도 연기되거나 연장되는 부분에 대해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기표는 기의를 향해 의미의 정점에는 이를 수 없다 하여도 관계와 프로세스에 대해 많은 사유의 지점을 던져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번 전시는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의 작업을 통해 기표적 차원에서 ‘Image’라는 것을 ‘Text’‘Vocabulary’와 비교하거나 연결시키는 가운데 인간의 시각적 인식 과정을 점검함으로써 기표 기의 사이의 관계로부터 다양한 예술 담론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시각 예술 창작자이기에 이들은 ‘Image’를 다루고 있음에도 그들의 작업 하나하나를 자세히 살펴보면 모두 ‘Text’와 같은 상징 기표와 일정 부분 연결시킬 수 있는 지점들을 찾아낼 수 있다. 흔히 ‘Image’는 직관 기표이기에 닮음을 근거로 한 것이므로 지시하는 대상, 닮은 어떤 대상을 용이하게 인지하기 쉽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반면에 상징 기표인 ‘Text’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회나 문화적 배경이나 약속된 어떤 체계와 같은 ‘Context’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Image’ 역시 기표로서 좀 더 명료하게 해석되기 위해서는 시간적 공간적 좌표 상에서 관계하는 또 다른 기표 체계가 필요한 것이므로 이 또한 ‘Context’가 필요하다고 할 수도 것이다. 그리고 데리다가 제시한 기표들 간의 차이가 의미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인용한다면 더욱 이 ‘Context’라는 부분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데리다가 말한 기호들 간의 차이는 정적인 차원의 대비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미뤄지는 관계를 말하는 것이고 여기서 의미가 생성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보면 이번 전시에서 정적인 ‘Text’보다는 이를 ‘Image’로 치환하여 시시각각 변화하는 시각적 감각의 변화 가운데 그로부터 의미를 추적해가고자 하는 것은 기표기의의 관계를 좀 더 심층적으로 살펴보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이번 전시의 작품들에는 외부 세계의 사물을 닮은 이미지뿐만 아니라 텍스트를 차용하기도 하고 텍스트적 구조나 체계를 차용하여 작업에 가져오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들의 작업을 더욱 깊이 있게 감상하려면 기표로서 이미지들을 시각적 감각이라는 지점으로부터 그 관계를 살펴보거나 이미지 혹은 텍스트들이 구조나 체계로 작동하는 프로세스를 인지하고 이를 읽어내는 노력이 필요할 수 있다.

이번 전시의 작업을 작가별로 살펴보면 먼저 강정헌 작가는 일상의 이미지들을 LED패널에 고해상도의 디지털 영상물로 구현시킨 후 여기에 아날로그적 방식으로 픽셀 형태의 무늬유리를 덧씌워 매우 낮은 해상도의 이미지로 보이도록 만든다. 이미지의 지시 내용보다는 매체 및 기술 발전을 역행하는 방향에서 픽셀 단위의 인간의 시각 프레임 자체를 인식하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해상도가 낮은 사진은 과거를 연상시킨다고 하였고 희미해지는 기억을 연상시킨다고도 하였다. 그런데 사실 이는 이미지가 지시하는 내용이 아니라 매체적 특성이 전해주는 감각이다. 강정헌 작가는 그것을 감각하고 있는 인간이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묻고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 권순왕 작가는 과거의 기억이나 꿈 등의 무의식 등은 현재의 주변에 있는 것들과 관계하는 것처럼 시간은 과거로부터 이어져 현재가 되고 미래가 된다.”라고 하였다. 작가는 일정한 형상 혹은 개별적 이미지들을 문장 내에서 어휘를 선택해 배치하거나 반복시키듯이 캔버스 위 이미지에 맥락을 만들어내고 시공간적 관계성을 만들어낸다. 회화적 인식의 평면과 판화적 프로세스가 만들어내는 관계망 가운데 과거의 기억과 꿈 등 무의식의 영역과 현재 및 미래를 구성하거나 이를 인식하도록 만드는 것에 관한 담론을 제안한다. 이어서 김미로 작가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동시대의 여러 조건들과 개인의 관계 및 조화 등에 중의적으로 표현하고 질문을 던지는 작업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작가가 자신의 작업을 판화적 프로세스를 사용하고 얇은 한지에 찍어낸 자연의 형상으로부터 이미지를 재조합 하는 행위를 수행해내는 것을 보면 작가는 대화하고 소통하는 언어의 재료로 이미지를 사용하고자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작가에게 있어 이미지의 재조합은 말하기의 방식이며 자연 혹은 타자와 교감하고 소통하는 방식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김현정 작가는 화면 내에 영자나 한글 그리고 점자와 같은 형식의 텍스트를 그대로 개입시킨다. 그리고 진주나 양털 등의 소재를 통해 시각적 감각과 촉각적 감각을 교차시키는 가운데 텍스트가 지시하는 의미에 감각의 문제를 중첩시키고 이를 다시 가치의 문제로 변환시킨다. 작가는 다층적 감각과 중첩된 의미층으로부터 감춰져 있는 내적 가치를 비롯한 인간 내면에 내재되어 있는 것들에 대한 통찰적 시각을 제시한다. 그런데 심철웅 작가 역시 자신의 영상 미디어 작업 가운데 문자를 등장시키는 작업을 보여주게 되지만 심철웅 작가의 경우 그의 작업에서 어떤 사물이나 의미를 지시하는 명사를 등장시키지는 않는다. 다만 AI 알고리즘을 사용하여 이라는 조사를 끊임없는 변화 가운데 무한히 반복시켜 표시되도록 만드는데 작가는 이에 대해 무뇌(latent-brain)는 무뇌가 낳은 텍스트도 아닌-이미지도 아닌 non-text의 유희만 본다라고 하였다. 사실 기표란 사실 임의적(arbitrary)이기에 본질적인 측면에서 보면 의미 부재의 텅빈 기표일 수 밖에 없다. 작가는 기의를 지시하지 않는 기표만을 무한히 재생산하는 화면을 통해 텅빈 기표와 같은 세계에 대해 은유이면서 어쩌면 이 세계 자체가 궁극적 실체를 지시할 수 없는 의미 부재의 공간일 수 있음을 암시한다. 이와 달리 보리윤 작가는 구체적인 의미가 담긴 문서들을 베이스로 하여 작업을 한다. 작가는 이 문서들을 신문이나 잡지와 같은 인쇄물 가운데 잘라내고 이어지는 문장을 해체하여 화면에 붙이면서 자연이나 일상적 사물을 명확히 지시하는 이미지가 형성 되도록 만들어낸다. 그러나 작가는 명료한 형상은 사실 그 사물의 본질을 나타내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임의적 문서들과 서사가 만들어낸 명료한 현실처럼 보이는 것들이 사실 일루전임을 작가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에게는 자신에게 중요했던 파쇄된 문서를 가지고 이미지를 만들어내야 했던 개인사적 경험으로부터 시작된 이 일련의 작업은 우리 인간 사회가 만들어낸 일루전과 같은 모든 것들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를 묻는 작업이 되고 있다.

이에 반해 이상은 작가의 경우 화면에 구체적인 텍스트를 담아내는 작업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화면을 가득 채운 정방형의 단위 면적에 수많은 붓질을 반복하여 행위의 흔적을 남겨냄으로써 그곳에 과거로부터 현재로 이어지는 시간의 서사를 담아내고 있다. 작가는 수많은 붓질이 모여 쌓여진 흔적은 있지만 색은 없어지는 빈터, 시간의 상실, 망각의 시간을 표현한다라고 하였다. 씨줄과 날줄처럼 가로세로 방향으로 촘촘히 모여있는 정방형 공간은 시간을 담아내는 관계망이자 기표 체계가 되어 현재의 위치에 드러나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곳에는 과거를 지시하는 흔적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비선형적 시간성 속에 현전’(presence)의 지점에는 도달하지 못한 수많은 차이들만이 감지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이아영 작가의 경우에도 화면에 어떠한 구체적인 텍스트가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픽셀처럼 반복되는 정방형 단위의 면 안에는 작은 색면의 도형들이 규칙적 혹은 불규칙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그런데 이아영 작가의 경우에는 화면에 기존의 문자 형태는 보이지 않지만 작가가 도형으로 변환한 구체적 문자가 담겨 있다. 한글 자모를 도형의 형태로 변환하여 구체적 의미를 지시하는 이미지적 문자를 화면에 담아놓은 것이다. 작가는 텍스트가 단순한 기호가 아닌 시각적이고 조형적인 요소로 작동하도록 확장한다라고 하였다. 문자와 유사한 기능을 하는 도형과 같은 형태 외에 작가는 색채를 통해서는 느낌과 감각을 함께 소통하는 작업을 보여주게 되는데 작가는 문자 체계의 기능을 차용하면서도 동시에 감각 언어로 기능하는 또 다른 가능성을 탐색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이정은 작가는 화면에 규칙적인 패턴을 사용하거나 사물 오브제를 사용하여 자신만의 감각 언어를 만들어내는 작업을 보여준다. 작가는 현대 소비사회로부터 복제와 차용의 개념을 가져와 패턴적인 반복을 보여주면서도 그곳에서 차이를 만들어 내는 작업을 보여주는데, 작가는 결국 이로부터 작가 스스로 자기 인식의 지점을 만들어내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전성아 작가는 인류 역사의 수많은 기록물들에 대해 이 모든 것들은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주고 받은 기록일 것이라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그렇기에 자신의 작업 역시 감정을 전달하고 공유하는 일종의 책과 같은 기능을 할 것이라는 점을 전제한다. 다시 말해 예술의 매체적 기능에 주목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인간의 매체적 소통이란 결국 인간 내면의 감정과 정서를 담아내는 것이라고 보고 그곳에 숨어있는 감정, 정서를 찾아나서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그러나 그 감정과 정서라는 것은 공감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하는 것 역시 중요하기에 작가는 다양한 매체적 실험을 해오면서 고대 동굴벽화의 스텐실을 비롯하여 실크스크린과 같은 이미지이면서 기표로 작동하는 매체들에도 관심을 갖는다. 그리고 드로잉적 방식으로부터 추상표현적 방식에 이르기까지 감각과 정서를 표출하는 다양한 방법과 매체를 다루는 태도에 대해서도 연구해오고 있다. 인간 내면의 세계가 외부로 표출되는 회화적 경로를 탐색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이미지를 다루는 방식에서 다양한 자신만의 독자성을 가지고 작업해오고 있음에도 그들 모두 인간 시각적 소통의 가능성을 이미지의 기표적 위치로부터 찾아가며 작업해 왔음을 그들의 작업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다. 이번 전시 감각 언어로서의 프레인팅: IMAGE_TEXT_VOCABULARY” 展은 시각적 감각 정보 전달의 프로세스가 기표로서 이미지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볼 것인가와 같은 문제와도 연결될 수 있다고 보고 이 문제를 상징 기표인 텍스트의 구조와 체계를 차용하여 이를 유추하며 고찰함으로써, 그리고 작가들의 작업에 내재된 다양한 층위들을 통해 살펴봄으로써 접근해 가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프레인팅은 매체간의 분류나 한계를 넘어 매체의 본질적 속성과 매체가 작동하는 프로세스를 다시 살펴보고 이미지의 감각 언어로서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매개적 개념이 되고 있다. 물론 이와 같은 이미지 그리고 텍스트와 같은 기표체계가 실제로 무엇을 지시할 수 있는 것이며 가능성과 한계는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작가들의 작업을 감상하는 관객에게 그 판단을 맡겨야 할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번 전시가 관객들에게는 이미지를 읽고 텍스트를 감각하는 특별한 경험의 기회가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바이다.

전시기획자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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