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lue Hour
Mixed media on canvas, 130.5x162cm, 2024

Mountain Spring1
Mixed media on canvas, 73x60.8cm, 2024




Dream of Spring3
Mixed media on canvas, 53x45.5cm, 2024
선의 산책자 혹은 존재자로서 감각하고 경험하는 것들에 대하여
서리안 작가는 자신을 ‘’라고 하였다. 일상 속에서 걸어 간다거나 산책을 한다는 것이 작가에는 캔버스 혹은 화지 위에 선을 긋는 일과 다를 바 없으며 붓으로 드로잉을 하거나 선을 긋는 것 역시 삶 속에서 산책 하거나 걸어가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삶을 살아간다는 것의 본질적 의미는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는 것으로부터 찾을 수 있을 것이며 어쩌면 살아 있다는 것은 변화하고 움직이는 것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삶의 행위를 이어가다가 멈추고 끊어지는 지점이 있다면 이는 죽음을 의미하거나 부재를 의미하는 것이 될 것이다. 서리안 작가는 오랫동안 존재와 부재 혹은 의미 있음과 의미 없음과 같은 상반된 영역에 대해 사유하며 작업해 오가가 결국 다다른 곳은 선이는 지점이라고 하였다. 선을 긋는 행위는 수행하는 것과 같았으며 그 선 긋는 행위가 모이면 면이 되고 입체가 된다는 사실을 몸으로 경험하게 되면서 특별히 직관하게 된 지점이 있었다는 것이다. 작가는 아마도 이 선이라는 개념을 토대로 하여 작업 하는 가운데 몸을 움직이고 육체노동 속에서 감각적 차원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을 때 이를 자신의 삶과 평행적으로 이어져 왔던 선형적 시간에 함축되어 있는 다차원적 감각 속에 새겨져 있는 기억들에 대해 떠올리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삶과 존재를 직관하도록 만드는 이 세계의 원리가 될 수 있음을 어느 순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작가에게 있어서 삶과 작업 가운데 만나게 된 선이라는 개념은 있음과 없음이라는 본질적이며 존재론적 의미에 대해 깨달을 수 있도록 하였을 뿐만 아니라 선과 유사한 방식으로 삶을 이어가는 행위에 녹아있거나 겹쳐져 있는 것으로 보이는 다층적 감각들에 대해, 혹은 여기에 연결된 다차원적 세계가 의미하는 바에 대해서도 통찰할 수 있는 계기를 가져다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작가의 작가노트를 보면 다양한 차원에서 자신이 감각하고 경험하게 되었던 순간들에 대해 서술해 놓은
것을 볼 수 있는데, 예를 들면 “소나무의 짙은 향이나 갈대를
지나온 바람의 서늘함, 이끼를 두르고 누워있는 고목의 습한 시간, 이제
막 카키색으로 노래하는 잎들의 환희, 낙엽의 푹신함, 눈
온 뒤의 고요함”등으로 묘사하고 있는 특정 부분은 작가가 마주하게 되었던 감각의 순간들을 선형적으로
서술한 것일 뿐만이 아니라 선 혹은 시간이라는 개념 속에 다층적으로 수렴해 있는 감각과 경험의 층위가 어떠한 것 이었는가를 잘 보여주는 예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작가가 선을 긋는 행위를 이어감으로써 면을 만들고 더 나아가 색과 공간의
감각들을 환원하여 보여주게 된 것에는 작가가 선 하나하나를 수행적인 방식으로 오랜 시간을 대상으로 하여 그것을 물질로 바꿔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작업 과정이 담겨 있었던 것이며 마치 일종의 연금술과 같은 신비로운 창조적 행위와 숨은 노력들이 숨겨 져 있는 것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작가가 그려낸 선 하나하나에는 어쩌면 각기 억겁의 시간이 녹아 있는 우주와 같은 세계가 들어
있을는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작가가 표현한 작업으로부터 파생되는 상상 공간에서만 가능한
교감의 지점에서 발생될 수 있는 일이겠으나 굳이 작가가 빠르고 쉬운 터치보다는 조밀한 선들을 이어가서 수행하듯 작업해 왔다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작가가 그려낸 선들 속에 마련된 감각의 지점에 다가서는 일은 작가가 경험했던 감각의 지점은 생각보다 더 깊은 차원에서 더 풍부하게 만나보도록 만들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선의 산책자를 자임하는 서리안 작가에게 있어서 존재의 기표는 선 그 자체일 것이다. 멈춰있는 것이 아니라 늘 움직이는 것, 산책하는 것처럼 변화가 연속된
것이 작가에게는 곧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가에게 있어 그 변화를 표시하는 지표는
감각이었기에 작가는 수많은 감각의 순간들을 매 순간 스스로 경험하려 했고 이 일을 지속하려 노력해왔음을 보게 된다. 그리고 동시에 그 순간들을 선으로 이어 내리는 표현을 만들어내려 하였고 결국 이 끝없는 과정을 회화 안에 담아내는
것을 자신의 작업으로 가져오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서리안 작가의 작업을 감상할 때에는 산이나
자연의 일부가 형상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오히려 형상보다는 추상으로 느껴지는 일이 있을지라도 형상의 유무나 그 형상으로부터 전해지는 의미의 무엇인가를
이해해 보려는 노력에 앞서 글과 글 사이의 행간을 읽어가듯 작가가 수행적으로 그려낸 시간들을 유추하는 가운데 선과 선 사이에 녹아 들어가 있는
감각들을 환원시키고 이를 심안으로 바라보는 시간, 몸으로 감각하는 어느 정도의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음을
주지하고자 한다. 작가는 어떤 특정한 대상을 그리는 것보다는 그 특정 대상과 마주한 시간과 그 경험의
사건에 담겨 있는 감각들을 작업에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작가가 그려낸 작업에는 시간의 흐름과
유사한 선형적 방식의 작업이 반복되고 있음에도 그 선들은 일방향적인 선의 흐름이라기 보다는 초월적 시간, 초월적
공간을 함축한 감각의 총합과 같은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작가의 작업에는 유한과 무한의
시간 너머를 향해 산책해 보는 ‘선의 산책자’로서 시간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기록들로부터 관객들이 이번 전시를 통해 물리적 시간과
공간 너머의 감각의 공간으로부터 존재한다는 것 혹은 부재하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경험할 수 있는 세계를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승훈 (미술비평)
카메라를 통한 대상의 완벽한 재현을 넘어 이제는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현실과 상상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장면 구성까지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실재의 재현에 대한 필요성에 의구심과 회의감은 작업을 하는 많은 작가들이 느끼고 있다. 나 또한 동시대를 살고 있는 한 개인으로서 재현에서 벗어나 주관적인 생각, 감정, 느낌을 나만의 색으로 표현 하기 위해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다. 특히 주관성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여러 조형요소 중에서 ‘선’에 집중하고 있다.
나는 회화가 주는 막강한 힘을 믿고 있다. 우리가 사는 현실은 불완전함과 불안정함으로 가득 차 있다. 어지러운 현실을 덮어 완전하고 안정감 있는 세계를 구현해줄 작업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나의 작업은 오랫동안 의미 있음과 의미 없음 사이에서 떠돌았다. 빨리 방황하는 것들을 제자리에 안착시키려는 여러 시도 끝에 찾은 것이 선이다. 수행하듯 긋는 선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선이 하나만 그어져 있을 때는 일차원적이지만 그 선들이 모이면 이차원이 된다. 선과 선 사이의 틈은 또 다른 선이 되고, 그 선에 색이 더해지면 다차원의 세계로 이동하지만 재현이 아닌 감각의 집합이다. 사실 선의 작업은 물감을 조색해서 통에 담고 캔버스에 올리기까지 다소 힘든 육체노동을 동반한다. 이 과정은 팔레트에서 조색한 물감을 붓의 터치로 작업하는 방식과 달리 단순하지만 고단하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이 점에서 선긋기를 통한 작업의 의미를 발견하게 되었다. 육체적 고단함은 작업을 마치는 순간 정신의 자유와 카타르시스를 동반하게 된다. 이렇게 얻어진 해방감은 다음 작업으로 이어지게 하는 에너지로 작동한다.
언제나 그렇듯 그날그날의 감각들은 선명하게 드러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희미하게 부서져버린다. 머릿속 어딘가에서 떠다니는 이러한 감각들의 이미지 조각들을 붙잡아 두는 것이 작업으로 표현해야 하는 작가들의 숙명일 것이다. 순간적 으로 떠올랐다가 순간적으로 사라지는 감각의 이미지 조각을 단단하게 잡으려면 캔버스 화면에 여러 겹의 레이어를 쌓아 올리듯 차곡차곡 체화 시켜 두는 수밖에 없다. 감각의 이미지를 체화하는 방법으로 산책만한 것이 없는 것 같다. 소나무의 짙은 향이나 갈대를 지나온 바람의 서늘함, 이끼를 두르고 누워있는 고목의 습한 시간, 이제 막 카키색으로 노래하는 잎들의 환희, 낙엽의 푹신함, 눈 온 뒤의 고요함, 이 모든 자연이 내게 주는 감각의 이미지를 잡아두는 시간은 캔버스 앞에 앉아있는 시간만큼이나 중요하다. 자연스럽게 이 모든 이미지는 내 작업의 소재와 주제가 된다. 항상 나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자연의 향연을 표현하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듯한 보편성을 추구하기 위해 형상이 구체화하지 않고 색의 변화에 초점을 주었다. 의식 속의 풍경화이면서 동시에 무의식 속에 저장된 기억과 감정을 들추어내는 추상화이기도 하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자유로운 표현의 나의 작업이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작업으로 다가가기를, 작업을 기꺼이 감상 해주시는 분들의 경험과 기억이 나의 작업 안에서 한데 어우러져 더 확장되어 펼쳐지기를 바란다.
- 작가노트 -
Seo Lian
작가약력
단체전
작품
Blue Hour — Mixed media on canvas, 130.5x162cm, 2024
Mountain Spring1 — Mixed media on canvas, 73x60.8cm, 2024
Variations on a Cloudy Day1 — Mixed media on canvas, 60.8x73cm, 2024
Spring Image in Yangpyeong — Mixed media on canvas, 53x45.5cm, 2024
Late Spring — Mixed media on canvas, 53x45.5cm, 20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