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유를 먹이는 남자, 석유를 마시는 여자 116.8x91cm, mix media on canvas
웃음, 슬픔, 그리고 폐 100x65.1cm, mix media on canvas, 2024 ![]() 사람과 개
130.3x97cm, mix media on canvas, 2024 ![]() 담배피는 소녀
116.8x91cm, mix media on canvas 모순적 언어, 반어적 언어로부터 읽게 되는 인간의 삶, 또는 존재적 위치에 대하여 기선우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더러움’, ‘부패한 것’을 연상시키는 다양한 최근의 작업들을 보여주게 된다. 작가는 이러한 작업들이 자신이 학창시절 경험했던 학교 폭력의 기억과 관련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작가에게 있어 그 기억은 마치 시체 한 구가 뇌 속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말하는데 작가는 오히려 그 더러움 속에서 발생되는 변수에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었다는 점을 밝히면서 어느 순간 더러운 시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의 작가노트를 보면 작가는 자신이 이러한 행위를 하는 것은 부패한 시체가 자신의 뇌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도록 만드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 일련의 작가의 언급은 일차적으로는 작가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학교 폭력의 기억이 얼마나 잔혹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작업을 보게 되면 작가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신체적이며 정신적 외상을 받게 되었을 때 몸과 정신에 일어난 현상들을 대상화하여 바라보면서 여기에 반응하고 있는 작가 자신에 대해 존재로 인식하게 된 지점을 그의 작업에 담아내고자 했음을 보게 된다. 폭력이라는 것은 존재를 부정하는 행위이며 삶보다 죽음에 더 가까운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작가는 아이러니 하게도 ‘살아있음’, ‘존재하고 있음’에 대해 그 반대쪽 영역에서 더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면서 그 대립적 관계 속 여러 양태에 대해 고찰하며 작업하고 이를 다시 경험할 수 있는 작품을 하게 된 것을 보게 된다. 그러한 이유로 기선우 작가의 작업을 살펴보다 보면 그곳에 등장하는 것들, 즉 작업 속 이미지를 포함하여 작품 제작에 사용되는 소품이나 물질들에서 대립적인 개념으로 읽혀지는 부분들이 많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작가는 상반된 개념, 즉 ‘살아있음’을 ‘죽음’에서, ‘순수함’을 ‘더러움’속에서 만나게 되는 예상치 못한 어떤 지점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며 이는 더 깊은 통찰과 감각을 일깨우게 된다는 점을 작업을 통해 제시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작가는 ‘더러움’, ‘부패한 것’을 연상시키는 작업을 어린 아이의 놀이처럼 지속하게 되지만 그럼에도 행복하지는 않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자신은 단지 자신의 작품이 행복하면 된다고 말한다. 작가는 산부인 어머니가 산고를 통해 낳은 아이에게 생명과 행복을 전해주고자 하는 것처럼 자신이 낳은 아이 같고 분신과 같은 자신의 작업을 마치 생명을 대하듯 대상화하여 바라보면서 자신이 경험한 고통을 통해 분신과도 같은 자신의 작업에 대해 생명 혹은 행복의 기원을 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대상화 한 분신은 작가 자신을 의미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보면 작가에게 작업은 자신에 대한 무한 회귀와 같은 존재 확인을 지속하는 근거가 되고, 자기 기원을 지속하게 되는 행위의 발원 지점이 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작가는 달콤한 사탕이 더럽고 부패한 것과 연결될 때, 파리 등의 사체가 가득한 죽음의 장소가 생명이 탄생되는 지점과 연결될 때와 같은 대립적 상황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변수에 주목하고자 한다고 하였다. 차이가 드러날 때 의미는 명료해진다는 점에서 보면 작가는 극단적인 차이가 드러나는 지점에 주목하는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러나 이는 작가의 시선이 어느 곳을 향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명확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작가는 극명한 차이와 의미를 삶의 어느 한 순간 경험하게 되었던 것이며 작가는 그 극단적 각성의 지점을 작업 가운데 표출하는 가운데 ‘살아있음’에 대하여, ‘존재한다’는 것에 대하여 발언하고자 한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언어는 ‘모순의 언어’가 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이는 부패한 시체로 생명을 말해야 하고, 더러움으로 살아있음의 순수함을 말해야 하며, 부재의 지점에서 존재에 대해 말해야 한다는 것을 각성적으로 알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다른 한편 부패한 것을 그려내고, 더러운 것을 표현할 때 작가는 행복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분신이자 작가 자신일 수 있는 자신의 작품이 행복하기를 기원하는 또 다른 모순적 행위를 하게 되었던 것은 인간이 살아가는 세계가 그리고 그곳에서의 삶과 존재적 위치가 그만큼 모순적인 상황 가운데 놓여있기 때문일 것이다. 삶이라는 기표가 죽음을 지시하고 죽음의 기표가 살아있음을 더 명확히 지시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은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더 깊이 질문할 수 밖에 없는 근거가 된다. 작가는 그러한 질문을 작업을 통해 던져주고 있다. 이승훈 (미술비평) 현재 나의 뇌에는 시체가 한 구 있다. 옛날에 학교폭력 당했을 때 뇌 속에 시체 한 구가 생겼는데, 옛날에는 시체의 부패한 냄새가 너무 심해서 천으로 덮어놨었다. 그럼에도 냄새가 없어지지 않아 정신적 자해를 했다. 또 하나의 나. 현재 나를 망치고 있는 건 가해자가 아닌 정신적 자해를 하고 있는 나라는 걸 깨달았을 때 덮어둔 천을 버렸다. 천을 버리니 당장은 부패한 냄새가 더 심해졌지만, 시체가 점점 깨끗해지면서, 지금은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는다. 나의 작업은 사탕을 중심으로 여러 변수들을 창출하고, 그 안의 더러움 속 변수들을 이어 붙여 시체를 만들어간다. 시체는, 내 뇌 속에 있는 시체와 비둘기(믹서기)를 투영한 후, 거기에 나의 생각들이 엉겨 붙어 완성된다. 시체의 엉겨 붙은 내 생각과 구더기들이 내 작업의 중심이라고 볼 수 있다. 난 더러움 속에서 발생하는 변수에 아름다움을 느낀다. 쓰레기가 가득한 방 안에 있는 파리와 사람의 시체.. 더럽고 죽음이 가득한 곳이지만, 곰팡이, 이름모를 파리 같은 생명들이 탄생하는 변수와 비둘기 (믹서기) 시체가 부패하면 피가 노란색이 되는 그런 생각하지 못한 변수... 믹서기! 그렇게? 어느날 파리가 방 안에서 날아다녔을 때 책으로 파리를 잡았는데, 파리 안에 구더기가 잔득 들어있었다. 왠지 거기서 매력을 느끼는 중… 시체는 변수들로 흘러내린다. 이 과정에서 나는 어린아이처럼 놀지만 결코 행복하지 않다. 나의 작품은 행복하면 안된다. 더러운 시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나의 강박은, 시체를 난도질하는 상상중... 성욕에 가까운 매력을 느끼게 해준다. 본인의 작업에 있어서 시체는, 뇌가 텅 비어버린? 성욕? 정확히는 부패한 시체가 좋다! 생명이 부패했을 때의 생기는 여러 변수들은, 나에게 많은 선명함을 준다. 난도질보다는 터트리는게 더 매력적일지도... 내 뇌속에 있는 시체는 현재 흐릿해진 내 존재를 계속 인식하도록 도와주고있다. 어쩌면 난 흐릿해지기 싫어서 시체를 계속 붙들고 있는 걸지도..구더기로 가득한 부패한 시체는변수들로 가득차서 내 뇌속에 있는 시체를 선명하게 만들어준다. 그 감각에 나는 매력을 느낀다. - 작가노트 기선우 - KI SEONWOO 무사시노미술대학 유화학과
작가약력개인전2025 모순의 언어 : 부패한 시체, 사이아트스페이스 더플로우
단체전파도손 암호화된 사람들
아울갤러리 5인 5색
홈페이지: instagram @gi.seonu
이 메 일: sunnykiwi11@gmail.com |
작품
석유를 먹이는 남자, 석유를 마시는 여자 — 116.8x91cm, mix media on canvas
사람과 개 — 130.3x97cm, mix media on canvas, 2024
담배피는 소녀 — 116.8x91cm, mix media on canva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