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린(Giraffe) 높은 시선의 대화
(Dialogue from a Heightened Gaze)
72.7x53.0cm, Mixed media on canvas, 2025


존재 혹은 존재의 조건을 마주한다는 것에 대하여
“고요한 메아리 - 잃어버린 생명의 서곡”이라는 다소 무게 있는 주제로 시작되는 이은미 작가의 이번 전시는 전시명에서 오는 무게감과는 달리 동물원에서나 볼 수 있을듯한 동물들을 마치 초상 사진을 찍는 것처럼 앞을 응시하고 있는 모습으로 화면 중앙에 배치시켜 동물들의 세밀한 표정을 그려낸 여러 회화 작업들을 보여주게 된다. 그런데 작가는 이 동물들의 초상이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생태적 위기의 상징을 그려내고자 한 것이며 그들의 고요한 시선을 담아냄으로써 관객과 감각적 대화를 시작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전시장에 동물에 대한 설명과 작가의 언급을 함께 배치시킨 것을 보면 작가에게 있어 이 동물들의 초상은 눈길이 가는 동물들의 이미지를 단지 어떤 미적 맥락에서 표현한 것이라기 보다는 생태적 위기를 맞이한 동물들의 현재를 초상 형식을 빌어 그려내고 그들의 눈빛과 표정을 통해, 그리고 다양한 정보를 제공를 통해 작업을 감상하는 관객들이 그 대상에 대해 여러 층위에서 마주할 수 있게 하기 위한 방법이었음을 알 수 있도록 만든다.
작가노트에서도 작가는 이 전시를 통해 공존과 재생의 가능성에 대해 상상할 수 있기를 희망하며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기를 원한다는 점에 대해 밝히고 있는데 이를 보면 작가에게 있어서 작업이란 작가가 살아가고 있는 자연과 만나고 소통하기 위한 프로세스이자 공존의 관계를 모색하는 실천적 행위가 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예술이 흔히 미학이나 존재론과 같은 철학적 범주를 중심으로 논의되어 왔었다면, 이에 반해 작가는 생태적 위기의 시대를 맞이한 우리 시대의 경우 예술가의 실천적 태도가 더 강조될 필요가 있다고 보았던 것 같다. 그리고 작가에게 있어 이 일련의 작업 행위로서 예술적 실천이라는 것은 존재가 존재로서 있을 수 있도록 만드는 컨텍스트, 즉 연결된 관계를 고찰하는 것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작가는 자연이라는 외부 세계, 즉 타자를 대상화하여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위치에서 떠나 초상의 형식을 빌어 정면으로 응시하며 대면하며 새롭게 관계하며 이를 경험하는 일로부터 자신의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작가의 작업 태도는 존재론 혹은 인간 존재의 문제를 타자와의 관계에서 바라보면서 윤리적 책임과 타자의 중요성의 문제로 심화시켰던 엠마누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를 연상시킨다. 레비나스는 “타자의 얼굴”(Face of the others)을 마주할 때 타자는 나와 다르지만 고유한 존재인 것을 인식할 수 있게 된다고 보았고 주체라는 것은 타자와 분리된 것이 아니라 “서로 얼굴에 응답하는 구조에서 연결되어 있다”라고 보았다. 다시 말해 레비나스에게 있어서 타자의 얼굴을 직면하는 것은 타자의 고통과 필요를 인식하는 것이며 윤리적 책임을 느끼도록 만드는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 레비나스가 말하는 윤리적 책임이란 개인의 도덕적 선택이 아니라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필수불가결한 요소였던 것이기에 이것은 인간존재의 핵심이자 행동을 요청하는 근거가 되는 것을 말한다. 이은미 작가 역시 이와 유사한 어법의 작업을 통해 멸종이 예고된 이 세계를 함께 살아가고 존재들의 얼굴들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경험, 타자로만 인식해왔던 것들을 보고 만지고 연결하는 경험을 제시함으로써 존재한다는 것의 근본적 의미와 함께 그 실천적 행위 가능성까지 묻는 작업을 해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작업을 보면 텍스트의 의미와 가치는 컨텍스트와의 관계에서 드러날 수밖에 없듯이 인간이라는 텍스트가 어떤 유의미한 존재로 읽혀질 수 있는 근거는 자연 환경과 같은 컨텍스트와의 관계에서 결정된다는 것을 작가는 어느 순간 직시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작가는 그 관계에 참여하여 유의미한 것들을 만들어갈 것을 그의 작업을 통해 촉구하게 되었던 것 같다. 물론 이는 환경 파괴와 생태학적 위기에 대해 수많은 경고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인간과 자연이 공멸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자각을 하게 된 것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고도 본다. 그래서 작가는 주체 외부에 있는 타자의 세계 혹은 수단적 대상이라고 보았던 자연의 모든 것들이 사실은 주체와 연결되어 있는 세계였다고 보고 타자의 고통은 주체의 고통이고 타자의 멸절이 주체의 멸절이라는 것을 멸종되어 가는 동물들의 얼굴을 직면하는 경험을 제시하는 작업을 통해 발언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작가는 특별히 인간이 자연이라는 거울로서의 타자를 잃게 된다면 존재의 의미만 상실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려 했던 것 같다. 다시 말해 작가는 타자가 없다면 의미만 아니라 존재 자체가 소멸됨을 말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존재자로서 행위와 행동을 촉구하는 작업을 발언하듯 제시하고자 것 같다. 그런데 작가에게는 그 바로 그 행동과 행위가 존재자로서 존재 자체를 확인하는 길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작가는 존재에 대한 고요한 메아리, 생명의 서곡을 바로 이 지점에서 확인하고자 하는 것 같다.
이승훈 (미술비평)
이은미 Lee eunmi
작가약력
단체전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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