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픽셀 혹은 프레임 너머로 인식하게 되는 너무 많은 미지의 것들에 대하여
강정헌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픽셀 형태의 무늬유리를 사용하여 고해상도 디지털 영상 작업물을 아날로그적 방식으로 해상도를 다운그레이드 해 보여주는 독특한 기법을 통해 새로운 시각과 관점을 제공하는 흥미로운 작업들을 선보이게 된다. 작가는 이러한 자신의 작업과 관련된 자신의 시각과 관점에 대해 그의 작업노트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 즉 작가는 우주적 차원에서 보면 거리가 곧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먼 거리의 별 이미지가 저해상도로 관측되는 것과 시간이 오래된 이미지가 자신에게는 저해상도의 이미지로 인식되어 왔다는 것을 서로 결부시켜 사유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작가는 이를 전제로 하여 이 일련의 작업을 해오고 있으며 이러한 관점으로부터 파생되는 다양한 사유와 정서들을 작업 안에 담아내고자 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작가의 언급으로부터 유추해 보게 되는 지점은 작가가 시각적 인식과 기억의 문제를 탐색하는 작업을 하게 되면서 어느 순간 시각적 인식의 문제가 존재론적 각성을 하는 계기로 작동하게 되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작가는 시각적 프로세스를 조정함으로써 인간의 시각과 인식에 대한 통찰적 관점을 담론화하는 작업과 함께 인간의 한계적 프레임에 대해 직시할 수 있는 구조 자체를 작업에 담아내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점점 멀어져 가는 먼 거리의 별 이미지가 흐릿한 이미지, 즉 저해상도로 관측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물리적, 광학적 차원에서 구조적 한계가 존재할 수 밖에 없는 점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작가는 인간의 기억이라는 것 역시 시간이라는 공간의 또 다른 축과 관련된 것이기에 이 축에서 거리가 점점 멀어지게 될수록 유사한 경험을 하게 된다고 보고 작가는 이점에 주목하게 되었던 것 같다. 물론 어떤 대상과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멀어진다는 것은 흐릿하게 인식되도록 만드는 조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디지털 시대의 광학적 매커니즘의 토대에서 보면 흐릿하다는 것은 낮은 해상도의 픽셀 이미지로 표시되는 것과 관련됨을 의미하기에 작가는 현대 디지털 매체 환경 속에서의 인간의 시각적 인식의 문제에 파고드는 가운데 흐릿하다는 것, 다시 말해 낮은 해상도로 변환된다는 지점이 무엇을 의미하는 가를 문제시 하고자 했던 것 같다.
이와 관련하여 강정헌 작가의 작업에서 특별히 눈여겨보게 되는 지점은 고해상도의 LED패널에서 구현된 디지털 영상물을 아날로그적 방식, 즉 픽셀 형태의 무늬유리를 사용하여 매우 낮은 해상도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도록 변환시키고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 거시세계의 물리학적 환경에서 대부분의 움직임이 관측되는 방식은 사실 아날로그적이었다. 그러나 기술문명에 의해 디지털 환경이 조성되면서 인간은 점차 고도화된 디지털 문명의 인식 방식에 적응해 왔고 인간 역시 고해상도의 이미지에 적응해 왔던 것이다. 이와 달리 작가는 오히려 역방향으로 아날로그 방식에 의해 디지털 매체의 고해상도 이미지를 다운그레이드 하여 보여주는 것을 보게 된다. 디지털 매체의 이미지를 시간을 거슬러 과거 디지털 초기 환경의 이미지로 바꿔서 보여주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는 고해상도의 매체 환경이 제공해 주었던 현실보다 실감나게 구현해 보여 주었던 디지털 환영은 아날로그적 프로세스에 의해 디지털 시대가 제공했던 픽셀만을 남기고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고 있음을 목도하게 된다. 작가는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가 본다는 것, 인식한다는 것, 그리고 기억한다는 것에 대한 기존의 관념들로부터 변경을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매체 환경에 의해 변조된 방식으로 인식해 왔던 모든 것들에 대한 관점의 재검토를 요청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픽셀 단위의 인간의 시각 프레임만을 강렬하게 인식하게 되는 작업들을 통하여 점차 시각 주체로부터 멀어지고 흐릿해지는 모든 것들에 대해 문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작가는 그렇게 인식하게 되는 인간 주체에 대하여 이 상황 전체를 무엇이라고 말해야 하는가를 질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픽셀 너머로 인식하게 되는 너무 많은 미지의 것들을 뒤로 하고 말이다.
이승훈 (미술비평)
인간은 우주에 비하면 먼지 하나와 같다. 그 먼지의 크기는 기준을 어디에 두는지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마찬가지로 디지털에서 사실 픽셀의 크기는 물리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다. 1pixel의 크기는 단지 하나의 정보일 뿐이다. 그 정보를 5x5mm로 표현하던지 50x50mm 만들더라도 여전히 1pixel이다. 단지 크게 보일 뿐이다. 그렇다면 현실에서는 1pixel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이러한 pixel을 이용하여 나의 희미해지는 기억, 붙잡고 싶은 기억, 오래된 기억 등을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아날로그 사진이 색이 바래고 닳아 없어지듯, 디지털 세상에서는 저해상도의 이미지로 변해가는 것을 표현하고자 했다.
저해상도의 그림은 마치 디지털에서 오래된 사진과 같은, 많은 변환과정을 거친 작품처럼 보인다. 사실 디지털에서는 아무리 오래되어도 사진의 해상도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과 사람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때문에 디지털로 찍은 오래전 사진을 보면 너무나도 생경한 느낌이 든다. 마치 방금 전에 찍은 것과 같은 선명도를 가지고 있는 사진을 볼 때면 희미해진 나의 기억과의 괴리감 때문에 잠시 혼란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디지털 사진 역시 기술의 발전에 의해 시간성을 부여 받았다. 처음 나온 디지털 카메라의 해상도는 매우 낮았다. 때문에 10년 전에 100만 화소를 가진 나의 카메라로 찍은 디지털 사진과 지금 가지고 있는 1800만화소의 나의 카메라로 찍은 사진의 해상도 차이는 어쩌면 오래된 기억이 흐려지는 것처럼 선명도의 차이를 갖는다. 그러한 이유로 저해상도의 사진은 마치 10년 전에 찍은 사진처럼 보이기도 한다. 흐려지는 과정을 해상도가 낮아지는 과정으로 치환하여 작품에 적용해 보았다.
또한, 우주에서는 거리가 곧 시간이다. 1광년은 빛의 속도로 1년 동안 간 거리를 의미한다. 우리가 별을 관찰할 때 거리가 멀수록 그 별의 이미지는 저해상도의 이미지를 갖는다. 시간이 오래될수록 이미지가 저해상도의 이미지를 갖는다는 가설을 세워볼 수 있다. 현재의 시간을 붙잡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어쩌면 예술을 존재 이유를 증명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결국 희미해지는 기억에 대한 슬픔, 잊혀지는 사람에 대한 아쉬움, 즐거웠던 시간에 대한 동경이 본인의 작업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
2024. 강정헌
강정헌Kang, Jung-Hun
University College London, Slade School of Fine Art 졸업
서울대학교 대학원 서양화과 졸업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작가약력
개인전
2023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2020 <매우 작은 먼지 (Very tiny dust)>
2016 <내가 꽃이었을 때 (When I was a flower)>
2012 <The Universe>
2010 <Nowhere>
2009 <45억년 전의 계획>
2008 <Universal Rules>
외 14회
단체전
2023 <이응노, 하얀 밤 그리고 빛>, 이응노미술관 (대전)
2021 <따스한 재생>, 강원국제트리엔날레, 홍천미술관 (홍천)
2021 <환기뮤지엄어드벤처-7개의 보물>, 환기미술관 (서울)
2020 <유연한 변주>, 이응노미술관 (대전)
외 119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