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비쿠시 카비캄1_130.3x130.3cm_mixed media on canvas_2021

카비쿠시 카비캄3_162.2x130.3cm_mixed media on canvas_2021

카비쿠시 카비캄2_60x60cm_mixed media on canvas_2021

카비쿠시 카비캄4_162.2x130.3cm_mixed media on canvas_2021
인연 혹은 관계로부터 바라보는 인간 그리고 세계에 대하여
정진아 작가는 이번 전시의 주제를 인도의 한 영화 제목을 인용하여 카비 쿠시 카비캄(Kabhi Khushi Kabhie Gham)이라고 하였다. 이 말은‘때로는 기쁘고 때로는 슬프다’라는 의미인데 작가가 자신의 작업에 대해 특별히 이러한 표현을 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 작가에게 있어 삶을 바라보는 관점,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어느 순간 바뀌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작가노트에서 작가가 언급한 바에 따르면 이러한 변화는 자신의 가장 가까운 친구를 잃게 되었던 개인사적 경험과 관련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하여 작가는 무엇이 자신을 만들었고, 자신의 본질은 무엇이며, 왜 존재하는 것이고, 어디로 사라지는가 등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하게 되었음을 밝히고 있는데 이 질문들은 모두 자신의 삶에 찾아온 고통 때문이었음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작가가 언급한 외로움, 공허감, 우울감과 같은 정서는 작가의 내적 상황, 다시 말해 고통과 아픔을 느끼도록 만드는 것에 대한 표현일 수 있지만 동시에 이는 작가가 경험하게 된 존재적 상황을 보여주는 표현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세계 속에서 인간 존재적 위치에 대한 작가의 시각을 드러내는 것이자 사회 속에서 작가가 경험하게 된 인간 관계의 상황 등에 대한 작가의 태도를 보여주는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와 같은 시각은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업에 그대로 담겨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작가는 플라스틱 판 위에 추상적 페인팅 작업을 하여 이를 여러 겹 쌓아 올려서 그 물감층만을 긴 색면이 되도록 길게 잘라 낸 후 이 색면들을 다시 임의적으로 재구성하여 씨줄과 날줄로 긴 면들을 엮는 방식을 사용함으로써 이 색면들이 가로 세로로 방향으로 교차될 때 바둑판처럼 생성되는 또 다른 차원의 추상적 이미지로 캔버스 전체 화면을 채우는 작업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페인팅 작업에 의해 생성되고 그것을 잘라내서 해체한 후 다시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변형된 추상 작업에 대해 작가는 스스로 자신의 작업 안에 삶에서의 인연에 관한 내용을 담아내고자 한 것임을 밝힌 바 있다. 작가는 이와 함께 그의 작업에서 보게 되는 가로 세로 면이 겹쳐진 곳에 생겨난 네모 모양의 단위체들은 원자, 픽셀, 망점과 유사한 것이며 이 세상의 모든 사물과 시공간의 최소 단위를 상징하고자 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 일련의 작업 내용을 보면 작가의 관점에서는 세상 모든 것들은 시간과 공간의 교차 혹은 만남으로부터 만들어지는 찰나적 순간에 비견되는 것이며 수많은 마주침의 산물이라고 보게 되었기에 결국 모두가 인연의 결과물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던 것 같다. 인연이라는 것, 그 관계로부터 만들어진 것들이 하나의 단위체가 되어 이들이 쌓이고 쌓여서 사물이나 사람이 나타나는 것이므로 세상은 사물과 사물, 사람과 사람의 관계 그 자체임을 깨닫게 되면서 작가는 자신이 발견한 세계를 작업을 통해 말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작가는 작업을 세가지 단계로 나누어 작업하면서 관계 혹은 인연의 프로세스의 담론을 만들어내고자 했던 것 같다. 작업의 첫 단계에서는 페인팅 방식으로‘창조의 단계’를 수행한 후 다음으로‘해체의 단계’에서는 길게 잘라내어 맥락과 서사를 분해하고 혼돈의 과정을 거치도록 만든 이후에 마지막으로‘재창조의 단계’를 통해 길게 분해된 것들을 씨줄과 날줄로 삼아 처음 페인팅 작업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가 드러나도록 만든 것은 고착된 이미지가 아닌 카오스적 혼돈 너머로 관계로부터 만들어지는 생성의 이미지를 산출하기 위한 작가적 방법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작업 내용을 보게 되면 작가는 아마도 작업을 해나가는 과정에서‘무엇이 나를 만드는가’또는‘나의 본질은 무엇인가’와 같은 존재론적 질문에 대한 해답의 방향을 어느 정도는 찾아낼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질문은 작가의 가장 가까운 친구를 잃게 된 것, 다시 말해 자신에게 익숙했었던‘관계’의 영역에 예기치 못한 급격한 변화가 오게 된 것에서 비롯되었던 것이지만 이후 작가는 작업을 통해 자신의 삶에서‘관계’라는 것을 어느 정도 대상화하여 바라볼 수 있는 상황이 되면서 자기 나름의 관점과 태도를 갖게 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그렇기에 이러한 작업이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작가는 인간과 세계의 본질적인 부분들에 대한 질문과 해답에 대해 작업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상징적 이미지를 통해 사유하고 고찰할 수 있게 되자 씨줄과 날줄의 형식으로 만들어낸 조형적 구조를 통해 통찰하게 된 세계, 이미지로 번안된 세계라는 것은 결국‘관계’의 산물이며 이 세계는 예기치 못한 상황이나 사건이 얼마든지 만들어질 수 있는 구조임을 직관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이제 작업을 매개로 하여 주도적으로 관계를 만들어내고 대화를 거는 시도를 하게 된 것으로 보이며 더 나아가 규칙적이면서 동시에 불규칙적인 특성을 모두 함축하고 있는 이 양가적 구조 안에서 무한히 돌고 있는 것 같은 혼돈과 질서가 연결된 모순적 수레바퀴를 넘어 인간의 삶에서‘인연’이라는 것,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 스스로 감각할 수 있는 방식의 작업을 보여주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작가가 물감 층을 쌓아 올리고 그 회화적 결과물을 해체하여 날줄 씨줄로 대신한 시공간의 매트릭스적 구조를 재구축해내는 등 일련의 수행적 경험을 반복하고 있는 것은 그의 질문과 해답을 찾는 일이 쉽게 끝낼 수는 없음을 알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한 이유로 작가는 작업뿐 아니라 전시를 통해 그 질문과 해답을 찾아가는 작업을 관객과의 상호작용으로 연장하여 진행해 보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승훈 (미술비평)
카비쿠시 카비캄 _ 순간에서 영원으로: 인연
무엇이 나를 형성하는가. 나는 왜 존재하나. 나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리고 왜 우리가 여기에서 다시 어디론가 사라져야 하는가…
친구와 마지막으로 함께 한 그날의 날씨, 공기의 냄새, 우리가 나눈 대화들, 입고 있던 옷, 볼링장에서 신발을 고르던 순간들, 그날의 모든 기억이 바로 어제의 일처럼 선명하게 그려진다. 동시에 그 모든 기억은 나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다. 그러나 카오스 속에서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자리 잡고 있다. 나는 앞으로 그날의 기억과 함께 살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다.
‘카비쿠시 카비킴’ (인도의 속담: 인생은 때로는 기쁘고 때로는 슬프다는 의미)
- 2023. 작가노트 中 -
Jina Choung
작품
카비쿠시 카비캄1_130.3x130.3cm_mixed media on canvas_2021
카비쿠시 카비캄3_162.2x130.3cm_mixed media on canvas_2021
카비쿠시 카비캄2_60x60cm_mixed media on canvas_2021
카비쿠시 카비캄4_162.2x130.3cm_mixed media on canvas_20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