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나선으로부터

정윤희

전시제목
이중나선으로부터
전시일정
2023.09.19~09.24
공간주소
서울 종로구 윤보선길 28 2F
전화번호
02-3663-7537
이중나선으로부터
정윤희 서동수 

이중나선으로부터에서 다시 읽어보는 존재혹은 관계에 대하여

이중나선’(二重螺線) 독특한 주제로 전시를 진행하는 서동수 작가와 정윤희 작가는 연결된 두 개의 전시 공간에서 각각 개인전 형식의 전시를 진행하면서 동시에 이 연립된 전시 자체가 하나의 주제에 의한 공동의 단일 기획 전시로 작동되도록 만듦으로써 주제만큼이나 독특한 포맷의 전시 방식을 선보이게 된다. 이 두 작가들이 선택한 공동 주제 이중나선’(二重螺線)이라고 것은 사실 생물학에서 다뤄지는 DNA 분자모형, 즉 서로 대칭인 두 개의 나선형 구조가 겹쳐져 있는 형태를 말하는데 작가들은 이것의 형상적 특징을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용어가 분자 생물학에서 사용된 맥락과 두 작가의 개별 작업 내용을 직접 비교한다면 일정한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와 같이 특정한 과학적 현상에 대한 용어를 공통의 주제로 인용하게 된 것은 아마도 이번 전시를 기획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작업이 서로 유사한 측면이 있지만 동시에 서로 작가적 성향에서 차이가 있음에 대해 주목하게 되었던 바 이것의 일정 부분 이 용어가 암시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고 그들의 의도를 상징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의 이중나선형상적 특징이라고 보았던 것 같다. 뿐만 아니라 과학적으로 이미 밝혀져 있는 DNA의 이중나선 구조, 즉 생명체에서 세포분열이 일어날 때 DNA의 염기 서열이 이중의 나선형 구조를 이뤄 이들이 복제되는 과정이나 변화, 변이가 일어나는 과정에서 생물 다양성이 가능하도록 만들고 있다는 점도 이 작가들이 상호작용하면서 무한한 변주 가운데 예술적으로 이뤄가고자 하는 지향점과 유사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였던 것 같다. 이 두 작가들은 이 상징적 형상과 이 형상에 담겨 있는 내재적 개념을 통해 일견 유사해 보일 수 있는 추상적 작업하고 있음에도 각기 다른 측면에 대해 작업하고 있으며 그들이 공유하고 있는 지점과 함께 그 너머의 차별적 지점이 있었기에 이를 동시에 상기시킴으로써 전시를 관람하는 이들에게 자신들의 작업을 더 깊이 인식시킬 수 있기를 원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그들 작업에서 감지되는 것들을 연립된 전시 공간 안에서 각기 개별적 카테고리로 분류하여 대칭적 위치에서 연결하여 비교함으로써 감상하게 된다면 이들의 의도한 전시 방식의 구조적인 부분과 작가 담론에 대해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 더 깊은 차원에서 작업에 대한 그들의 시각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이 두 작가의 작업을 살펴보면 먼저 서동수 작가는 존재란 무엇인가라는 명제를 화두로 하여 그의 작업을 시작한다. 그리고 바로 그 존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작업을 매듭짓는다. 작가는 작업에서 존재란 무엇인가라는 묵직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사변적 사유보다는 인간 내면의 욕망이라는 실제적 현상을 마주하게 되었던 경험을 되돌아 보면서 이에 대해 스스로 감각하게 된 것들로부터 작업을 해왔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작가는 무엇보다 본능적으로 시선을 가져가게 된 것들을 작업으로 담아내면서 감각의 지평으로부터 그의 작업을 수행해 나가고 이를 통찰할 수 있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런데 작가가 시각적인 결과물들을 산출하는 작업을 하고 있음에도 시각적 텍스춰를 넘어 캔버스의 표면에 다양한 마티에르를 형성시키는 등 시각성보다는 점차 촉각성을 더 부각시켜 표현하게 된 것을 보면 작가가 감각의 영역 중에서도 어떠한 부분에 관심을 갖고 있는가에 대해 살펴보는 것 역시 중요할 수 있다고 본다. 즉 작가가 경험하게 되었던 감각의 영역이 어떠한 부분까지를 포괄하고 있고 어떠한 양상을 띄고 있는 지에 대하여 살펴보는 것은 작업에 대한 작가적 관점을 읽어가는데 중요한 토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보면 작가가 일상 가운데 발견하고 선택한 특정 흔적들을 이미지로 작업 안에 담아낼 때 이를 상처라고 부르고 있다는 점은 특히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는 그가 발견하게 된 대상, 존재라는 것에 대해 작가가 어떠한 시각을 갖고 있으며 이로부터 무엇을 표현하고 어떻게 표현하고자 했었던 것인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작가가 작업에서 포착한 것들은 대부분 알 수 없는 무엇인가가 움직이게 되면서 남겨진 흔적들이며 어떠한 의도를 가진 흔적도 아니고 무엇인가를 명확하게 지시하는 흔적도 아님에도 작가는 언제부터인가 자신이 발견한 흔적들에 자신이 살아온 삶 전체를 투사하여 바라보고 있었음을 자각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작가는 여기에 이어서 스스로 자신의 작업 속 흔적들을 다시 고찰하는 가운데 존재에 대해, 그리고 생명에 대해 감각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재인식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의 작업을 바라보게 되면 그의 작업 속 흔적에 겹쳐져 있는 상처가 의미하는 바에 어느 정도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작가가 표현한 흔적들은 무엇인가 정지해 있었던 것, 죽어 있는 것들로부터 가져온 흔적이 아니고 단순한 움직임의 흔적도 아니며 생생히 살아있는 존재의 흔적, 살아있기 위해 몸부림 친 상처가 난 생명의 흔적일 수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작가는 아마도 생의 흔적들이란 결국 어느 누구, 어느 존재에게나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흔적이 될 수 밖에 없으며 생존하기 위해서는 상처와 같은 부산물을 남길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강조하여 말하고자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는 이러한 생의 흔적들을 감각하는 것이 곧 실존하는 존재를 감각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존재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됨을 의미하는 것으로 읽혀진다. 작가는 이 흔적과 관련하여 관객들이 그의 작업 내용을 읽어내고 이해하는 것 이전에 먼저 감각이라는 방식을 통해 이 흔적들을 접하고 느껴보는 시간을 갖게 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결국 작가에게 있어 존재라는 것은 사유에 의해 인식되는 것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감각하게 될 때마다 그 어느 한 순간순간에 대해 느끼게 되는 미지의 그 무엇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와 달리 함께 전시를 진행하는 정윤희 작가의 경우 작가적 관심 영역을 촉각 등 시각적 감각과 연결된 다른 감각들로 확장하려 하기 보다는 단지 시각 자체에 대해 더 깊이 고찰해 가고자 하는 것을 보게 된다. 작가는 특히 자신에게 있어 시선(視線)이란 시선(詩線), ‘Poetic Line’일 수 있음을 먼저 전제한다. 그러므로 작업을 통해 표현되는 작가의 시선이란 엄밀한 과학적 관찰이나 논리적 정확성보다는 작가가 자신의 작업노트에서 밝힌 바와 같이 낯설게 보기, 다르게 보기를 위한 은유적이며 상징적인 방식의 주관적 시선 방식과 관련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작가는 그의 작업에서는 이와 같이 작가가 사유해왔던 시선 대한 담론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작가는 작업의 의미를 직설적 지시성 안에 가둬져 있도록 놓아두지 않고 은유적이며 상징적 영역으로 옮겨와 해석의 가능성을 무한히 열어 놓고자 했던 것이다. 이는 작가의 시선이 단순히 일직선을 연상시키는 선형적 구조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작가에게 있어 바라본다라는 시각 행위는 시각적 인지 과정을 넘어 여기에 이어져 뒤따르게 되는 프로세스, 즉 정()의 해석과 함께 여기에 관계하는 반()의 해석,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어지는 합()의 해석으로 나아가는 일련의 순차적 과정이 되고 있었으며 이것이 끊임없이 이어져서 변증법적인 방식으로 끝없이 확장되는 체계로 발전하고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작가가 제안하고 있는 변증법적 입체구조에 근거한 시선이라는 것은 결국 존재에 대해 사유해 왔던 기존 관점을 뒤집어 모든 것들을 관계라는 지점으로부터 해석하려 하고자 하는 작가의 탈중심적 시각과 태도를 그대로 반영한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도록 만든다. 그렇기에 작가의 이와 같은 관점으로부터 그의 작업 전반을 다시 살펴보게 된다면 작가에 대한 여러 가지 흥미로운 부분들을 발견하는 지점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러한 예 중 하나는 본래 작가에게 있어 세계 가운데 대상을 바라본다라는 행위는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무엇인가를 그린다라는 행위와 전혀 다르지 않은 것이었다는 점이다. 작가가 제안하고 있는 변증법적 시각에서 볼 때 작가에게 있어 시선(視線)이란 시선(詩線)과 다르지 않다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작가의 관점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작가가 말하는 ‘Poetic Line’ 즉 시적 라인이라는 것은 내면세계의 것들을 토해내듯 드러내는 행위일 수 있겠지만 이는 동시에 삼라만상의 외부 세계를 바라보는 행위이자 이 모든 것들을 시각 프로세스에 의해 자신의 내부를 향해 함입시키는 행위, 즉 양가성이 내재된 체계로서 작가가 지향하는 합()의 체계이자 관계가 생성해내는 무한의 체계를 의미하는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자연과 우주를 형상적 측면을 살펴보면 공간적 차원의 경우 미시적 영역에서는 자연의 모든 물질을 구성하고 있는 원자의 형상적 특징이 원형에 가깝고 거시적 영역에서도 우주에 가득한 행성들의 형상적 특징 역시 대부분 원형이라는 점에서 볼 때 자연과 우주의 형태적 특성 중 하나는 원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러나 시간적 차원에서는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하나의 직선을 따라 흘러가고 있는 듯한 시간에 대한 감각은 선형적 형상을 떠올리도록 만들며 이 역시 자연과 우주의 또 다른 형상적 특징일 수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런데 이번 전시에서 거론되고 있는 것 같은 나선적 형상은 원형과 선형의 두 가지 시공간의 특징이 결합된 형태가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하게 된다. 사실 나선형 형상 역시 자연과 우주 가운데 은하의 형태나 바람 혹은 물의 흐름 가운데 자주 발견되고 있다. 이번 전시의 작가들이 자연과 우주의 형상과 닮아 있는 나선형의 형상, 특별히 이번 전시에서 서동수 작가와 윤정희 작가가 두 개의 나선 형상이 겹쳐져 있는 DNA 이중나선 구조의 형상을 인용하여 그들의 작업을 선보이게 된 것은 이 작가들이 자연과 우주 또는 생명과 존재와 같은 이 세계의 본질적 영역에 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서동수 작가는 욕망과 상처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순환되고 있는 것 같은 세계에서 살아있는 존재로서 감각, 특별히 촉각과 같은 심층적 감각으로부터 감지하게 되는 생의 흔적에서 실존적 의미를 찾아가고 있는 반면 정윤희 작가는 수동적 위치에서 외부 세계로부터 감각하게 되는 정보에 의존하기 보다 감각의 주체이자 감각의 대상으로서 주변의 모든 관계로부터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양가적 체계, ()의 체계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보안다. 그러나 본디 이 두 작가의 경우 어떤 본질적 영역 자체를 주된 관심사로 상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 두 작가는 감각이라는 통로를 통해 외부세계를 느끼고 다시 반응하는 가운데 존재를, 그리고 세계를 인식해 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작업을 병렬적 위치에서 함께 감상하며 작업의 유사성과 대비된 차별성으로부터 이 작가들의 작업 담론을 탐색해 보는 것은 유의미한 일이 될 것이라고 본다. 그렇기에 이 작가들은 이중나선이라는 독특한 개념을 제안하고 이 형상적 특성을 토대로 하여 자신들의 작업을 감상하며 감각과 사유의 지평을 넓혀 보기를 권하고자 했던 것 같다. 이 작가들이 제안하고 있는 이중나선이라는 개념을 통한 상호작용을 한다는 것은 사실 그리 복잡한 것은 아니다. 두 작가의 작업이 배치된 위치에서부터 이들 작업과 담론을 비교하는 가운데 그들 작업의 얼개를 풀어가게 된다면 한 작가의 작업에서 단선적으로 감상하고 읽어낼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감각하고 사유할 수 있음을 전시를 기획하며 의도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 두 작가는 아마도 서로 다른 면을 발견하기도 하고 유사한 점을 발견하기도 했지만 서로 다른 지향점을 동일선상에서 같이 전시를 함으로써 그들 스스로, 그리고 감상자들에게도 작업에 대한 인식의 범위를 더 확장해 갈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이 서로의 작업을 통해, 그리고 서로를 향해 발견했던 것처럼 관객들 역시 이들의 작업과 상호작용하게 된다면 아마도 이들이 드러내고 있는 시각적 표현 부분뿐만 아니라 감각 혹은 이중나선이라는 은유와 상징에 감춰져 있던 세계에까지 한 걸음 더 가까이 가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해보게 된다.

이승훈 (미술비평)  

시선 詩線
Poetic Line

시_장지 위에 아크릴릭_32x41cm_2023

떠도는 풍경 93-23_캔버스 위에 아크릴릭_116.8x80.3cm_2023

떠도는 풍경_너와 나 Ⅰ_장지 위에 아크릴릭_50x64.5cm_2023

떠도는 풍경_바람_장지 위에 아크릴릭_38x40cm_2023

평범한 일상 속에서조차‘본다’라는 것은 중요한 문제이다. 사물을 보거나 관계를  살펴보는 것은 선택과 판단의 근거이며 존재와 가치의 문제이다. 

세계는 역사적으로 많은 변화와 혁명을 거쳐 지금도 끝없이 움직이고 있다.

첨단 과학과 경제적 풍요의 시대에 역설적으로 가난과 고통 그리고 이전에는 겪어 보지 못한 생태파괴와 환경오염으로 미래는 마냥 낙관적일 수 없다.

이러한 시대일 수록 예술은 더욱 필요하다. 

밀란 쿤데라는‘인간 존재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라는 질문 그 자체가 하나의 해답이라고 했다. 예술은 언제나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은‘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나의 작업은 감각을 열어 무한한 운동 중의 상태로 대상과 교류하고 상생하며 내 삶의 철학을 실천하는 장이 되고자 한다. 내가 따르고자 하는 스승은‘자연’이다. 

시들어 떨어지는 꽃에서 다시 피는 희망을 보듯 결과에 집착하지 않으며 소멸하지    않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고 받아들인다. 

작업 속에서의 붓질은 외부와 교류하는 하나의 역동적 개체로서, 정착하기를 거부하고 중심이 되기를 거부한다. 조형적 형태는 물감을 쌓고 비우고 지우기를 거듭하고,      종이를 찢고 오리고 붙이며 그 위의 선들은 자유롭다. 화면은 밖으로 확장되고자 한다. 

무딘 언어로 확신의 기쁨을 경계하고, 극복의 피곤함을 멀리하고, 이름없는 자유와   사라져버리는 불멸을 꿈꾸는 것, 나에게 있어서의 그리기이다.

2023. 정윤희

Zhoung, Yoonhee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원 서양화과 졸업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서울예술고등학교 미술과 졸업
개인전 3회
그 외 그룹전 다수
Where must we go,
서동수 개인전

Where must we go, 2022-05, 162.2x112.1cm, mixed media on aluminum pane, 2022l

Where must we go, 2022-06, 112.1x162.2cm, mixed media on aluminum panel, 2022

Where must we go, 2332, (Edition1-10) 58.0x39.3cm, Archival Pigment Print on paper, 2023

Where must we go, 2331, (Edition1-10) 26.2x100.0cm, Archival Pigment Print on paper, 2023

존재란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모든 살아있는 존재가 그렇듯 인간은 무언가를 끊임없이 욕망한다. 

죽지 않을 만큼의 안전함을 욕망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쾌락으로, 탐욕으로 변모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이라는 존재는 바로 그 욕망이 에너지가 되고 이를 토대로 움직이기 시작하고 

삶을 살아가게 된다.

삶은 욕망과 욕망이 부딪히는 상황 속에서 상처를 주고 받는 사투의 연속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욕망하는 생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생에게 남겨질 상처가 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상처는 생이 삶을 살았다는 증거이자 꼬리표이다. 

그것은 인간이 역사라고 부르는 것일 수도 있다.

나의 작가적 탐구는 바로 이 지점, 

작은 상처 혹은 작은 역사를 추적하는 일로부터 시작되었다.

스산한 바람이 부는 어느 동짓날, 

오랫동안 사람 손이 타지 않은 그래서 길조차 가늠할 수 없는 들과 산을 헤매다 보면 

제멋대로 얽히고 설킨 삶의 끝자락에 선 생명체를 발견한다. 

가장 치열한 생존방식이 만들어 낸 자유롭고 기운찬 선들의 향연을, 

때로는 하찮아 보이는 모서리를 찾아 나서기도 하고 낡은 철판에 남겨진 스크레치들을 

추적하기도 한다. 

끊임없이 살아 움직였던 모든 것들의 남겨진 상처의 흔적을 찾아나서게 되자 

그곳에서 비로소 생의 비명 소리를, 삶이 존재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런데 이 비극적인 순간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생과 자연의 삶 속에서 가장 슬프고 고통스러운 

그래서 마침내 자유롭고 아름다운 선의 형상들을 만나기를 원한다. 

아름다움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은 이 느낌들은 과연 상처가 가져온 것인지, 

상처를 견뎌낸 삶이 가져온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그 무엇이라 짐작할 때 즈음 그들은 비웃듯 전혀 다른 모습으로 계속해서 탈바꿈한다. 

끊임없이 생멸하는 존재들..

그들과의 만남은 격렬한 춤사위가 되어 내가 경험하지 못한 황홀한 미지의 세계로 이끈다. 

생의 흔적을 포착하는 그것은 역사에 걸맞은 회화의 모습이 되고, 

나로 하여금 끊임없이 그 길을 걷게 한다.

2023. 서동수

서동수  Seo, Dong-Soo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Solo Exhibition
2022  제3회 개인전 (인사아트센터 본관) 
2021  제2회 개인전 (갤러리 더플럭스/더플로우 초대전)
2020  제1회 개인전 (인사아트센터 본관)
Group Exhibition
2023  86 동문전 (갤러리 더플럭스/더플로우)
2023  빌라다르전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2023  사미인전 (카포레 컨벤션홀)
2022  창작미술협회전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2022  babidiba NFT 작가전 (루벤갤러리)
2021  NFT 비긴즈 아트페어 (사이아트센터)
2021  빌라다르전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2021  창작미술협회전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1997  서울의 바람전 (인데코 갤러리)
1995  감성과 표현전 (이콘 갤러리)
1995  서울의 바람전 (인데코 갤러리)
1995  뉴폼전 (윤 갤러리)
2022  광화문 국제아트페스티벌 초대작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본관)
2021  소마미술관 아카이브 등록작가 (소마미술관)

작품

  • 시_장지 위에 아크릴릭_32x41cm_2023

  • 떠도는 풍경 93-23_캔버스 위에 아크릴릭_116.8x80.3cm_2023

  • 떠도는 풍경_너와 나 I_장지 위에 아크릴릭_50x64.5cm_2023

  • 떠도는 풍경_바람_장지 위에 아크릴릭_38x40cm_2023

  • Where must we go, 2022-05, 162.2x112.1cm, mixed media on aluminum pane, 2022l

  • Where must we go, 2022-06, 112.1x162.2cm, mixed media on aluminum panel, 2022

  • Where must we go, 2332, (Edition1-10) 58.0x

  • Where must we go, 2331, (Edition1-10) 26.2x100.0cm, Archival Pigment Print on paper,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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