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hidden flux-chorus Ⅰ-ⅩⅤ_172.5x400cm_2020-2023
물수제비 stone skipping_75X52.5cm_Drawin_2023


제비꽃과 회오리 Violet and whirlwind
116.8x91cm(50F)_acrylic, woodcut colle, oil on canvas_2022
표상 체계에 갇힐 수 밖에 없는 인간의 구조적 한계, 또는 그 너머에 대하여
이번 전시는 ‘프레인팅’ (PRAINTING=PRINTING+PAINTING)이라는 개념 아래 자신들의 예술 담론을 예술 작업으로 풀어낸 권순왕 작가, 최종운 작가의 개인전이자 두 작가의 연립전 형식의 기획 전시이다. 그런데 이 작가들이 최근 수년간 지속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프레인팅’ (PRAINTING)이라는 신조어는 단순히 프린팅(PRINTING)과 페인팅(PAINTING)의 합성어로서 장르 통합적 의미만을 담고있는 것이 아니라 혼성적 감각 및 지각이 필요한 시대가 된 현대의 매체적 상황에 대해 통찰해 볼 것을 제안하는 예술 개념으로도 읽을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이 작가들의 작업은 평면과 입체 혹은 설치 등 다양한 양상을 보이고 있음에도 그들의 작업 행위는 원본 혹은 원형이 있는 것에 대한 복제, 다시 말해 프린팅과 같은 행위를 한 것으로 보이기도 하고 반대로 비대상적인 움직임, 즉 페인팅이나 드로잉과 같은 행위를 한 것으로 보이도록 한 작업 방식을 보면 이들은 회화적 작업방식이나 기법 그 자체보다는 그 너머로 그들이 제시하는 복합적인 작업 프로세스에 담겨 있는 여러 함의에 대해 토론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작업은 디지털 기술복제시대 이후 원형과 복제본의 경계가 무의미해진 시대적 상황이 반영된 것일 수도 있고 과학 기술 발전에 따른 매체 환경의 변화 가운데 메타버스 등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경험을 하게 되면서 다중우주적 세계관을 갖게 된 현대인들의 지각과 감각이 반영된 것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작가들이 평면 작업의 기법으로 이해되어 왔던 프린팅이나 페인팅과 같은 작업 프로세스의 개념적 그물망을 토대로 하여 그들의 다양한 작업들을 선보이는 것은 이들이 제안하는 프레인팅이라는 혼성적 개념이 기법이 아니라 자신들의 예술적 사유체계를 설명하는데 가장 적절하다고 보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이번 전시 주제를 보면 ‘F=ma’ 라는 물리학적 수식을 전면에 내세우고 그 대신 프레인팅 아트 프로젝트(PRAINTING ART PROJECT)는 헤드 타이틀로 위치시키고 있음을 보게 되는데 이는 그들의 작업 방향성을 예측해 보도록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 작가들은 서로 다른 내용의 작업을 해오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히 ‘프레인팅’ (PRAINTING)이라는 개념 망 안에서 그들의 작업을 같은 방향에서 해석해 낼 수 있다는 것과 이와 동시에 그들 작업의 공통적인 측면은 특별한 해석이 아니라 어쩌면 ‘F=ma’ 라는 자연의 법칙을 설명하는 단순한 수식 안에 담겨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자 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흔히 힘(Force)은 질량(mass)x가속도(acceleration)로 알려져 있는 ‘F=ma’ 라는 것은 운동 혹은 힘(F)이 일정한 질량(m)을 가진 대상에 가해지게 되면 가속도(a) 즉 속도의 변화가 있게 됨을 정의한 물리 이론상의 수식이지만 이 작가들에게 있어 힘이라는 것은 두 실체 사이의 관계를 의미하므로 이 관계에 변화를 가져오는 힘(F)이 가해지는 것은 가속도(a)로 표시되고 있는 관계를 정의하는 수치에 있어 직접적 차이를 만들어내는 근거가 된다고 보았던 것 같다. 즉 이 작가들은 각기 다른 실체들 사이에서 차이를 만들어 내는 힘이라는 것, 바꾸어 말하면 유의미한 변화를 만들어내는 원인에 주목해왔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이들의 예술 작품에서 의미를 발생시키는 것이란 결국 작가가 일정한 힘(F)을 통해 어떤 대상에 개입하여 관계에 차이와 변화를 일으킴으로써 이전과는 다른 특정한 사건을 만들어낼 때의 특정 행위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들뢰즈가 공장에서 기계의 배치와 접속에 따라 생산품의 종류가 달라지듯 욕망의 접속과 배치에 따라 생산품의 종류가 달라지는 것으로 본 것처럼 이 작가들의 작업에서도 관계의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은 특정한 사건에 변화와 차이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며 이로부터 다른 의미를 발생시키게 된다는 것을 보게 된다. 수없이 다른 존재, 물질과 접속과 배치를 반복하는 것은 본질이라고 생각했던 것들로부터 방향을 돌려 그로부터 달라지고 변화된 관계, 변화된 본질, 변화된 의미를 경험하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근대 사회를 구축하도록 만든 서구의 철학적 전통에는 본질이 있고, 진리가 있고, 원형이 있다고 보고 이를 표상(表象)해 냄으로써 동일성으로 환원하고자 하였지만 이와 달리 이 작가들은 예술작업에서 재현이나 표현이라고 지칭되고 있는 부분의 관성(慣性)적 태도에서 벗어나서 오히려 실체로서 관계에 변화를 일으키는 부분, 이른바 사건의 동인에 대해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작가들의 작업을 살펴보면 먼저 권순왕 작가는 차이를 만들어내고 변화가 일어나는 사건의 현장을 이번 전시에서 ‘프레인팅-장면’ 이라고 지칭하면서 차이, 그리고 반복이 지속되는 감각과 지각의 현장을 보여주게 된다. 작가는 “나는 어떤 대상과의 관계에서 시간 속 상태나 기분이나 그때의 장면에 접속하려고 한다” 라는 언급을 한 바 있다. 작가는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동일한 크기의 캔버스 혹은 물감이라는 물질과 상호작용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 과정에서 작가는 무엇인가를 그곳에 덧붙여 자신의 기억을 소환해내기도 하고 시간의 흐름과 몸의 움직임에 따라 매 순간 캔버스 위에 드러나고 있는 차이의 흔적들을 그대로 감각하기도 하면서 이른바 장면으로 인식되는 이미지를 그대로 드러내는 가운데 이로부터 감각하게 되는 것에 대해 더 깊이 있게 사유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작가는 그가 캔버스위에 남긴 것들에 대해 “얼룩과 균열을 메꾸어 나가는 동시에 긴장을 자아낼 수 있는 차이” 라고 인식하고 있음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이는 그의 감각과 인식의 간극에 대한 작가적 통찰이 무엇인가를 명료하게 보여주는 부분이다. 반면 최종운 작가는 ‘시각의 지평선’ 이라는 명제 하에 ‘고요한 긴장’ , 혹은 ‘공존’ 의 지점을 부각시킴으로써 그의 작가적 담론을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자신이 말하는 ‘고요한 긴장’ 이란 “새로운 상황이나 접촉에서 느껴지는 시지각적 지평선” 과 관련된 것이라고 하였다. 작가는 “일상적 사물이나 상황에서 의외로 낯선 감각과 감정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고 말하는데 작가는 반복되는 일상이라고 생각했던 것들로부터 어느 순간 다름과 차이를 인지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일상성으로 느껴왔던 균형의 지점이 허물어지는 순간으로부터 감각하게 된 변화와 차이가 ‘섬광’ 이라고 표현하게 될 정도로 유의미한 그 무엇으로 인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작가에게는 ‘고요한 긴장’ 의 지점으로부터 차이를 느끼게 된다는 것,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는 것은 간혹 거대한 에너지를 경험하는 것과 같은 감각으로 다가오기도 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관성적으로 학습된 표상 체계에 갇혀버리는 오류를 경험해 왔음에도 쉽게 그 한계로부터 벗어나기는 어려운 존재일는지 모른다. 이는 인간의 시각적 해상도와 같은 신체 구조상의 한계일 수도 있고 게슈탈트 이론에서 말하는 것처럼 인간의 인지 구조상의 문제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인간들은 그동안 수많은 환영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스스로 그 환영 가운데 함몰되기도 했다는 점일 것이다. 이데아, 진리, 본질, 중심, 원본이라는 환영을 스스로 상정하여 대상화하고 다시 이를 재현하고 표상화하는 과정 가운데 실제에 대해, 존재에 대해 이해하려 했던 태도는 오히려 우리가 감각하고 지각하는 영역을 협소화하고 간극과 틈으로부터 인지할 수 있는 부분을 제한하는 심각한 오류를 만들어 냈다. 그러므로 이번 전시에서 앞서 전제하고 있는 ‘프레인팅’ (PRAINTING)이라는 개념은 인간의 구조적 한계와 함께 이로부터 파생될 수 밖에 없는 환영을 넘어 존재로서 직면하게 되는 외부의 여러 대상들과 관계하는 방법에 대해 작가적 관점에서 제시하는 하나의 제안이 되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 그것은 차이와 반복이 지속되는 시지각 상의 구조를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주는 가운데 일종의 가속도(acceleration)로 지칭될 수 있는 변화, 또는 움직임의 의미에 대해 각성할 수 있도록 만드는 하나의 기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작가들은 이것이 인간의 감각과 지각 등의 한계적 상황을 넘어 조금 더 실체에 가까이 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보았던 것으로 보이며, 동시에 이것이 인간이 주체로서 대상과 관계한다는 것, 다시 말해 인간의 움직임, 행위가 만들어낸 차이 혹은 의미를 알아가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 이르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 작가들은 프린팅과 페인팅을 하나의 방법적 개념으로 상정하고 작업을 통해 재현 혹은 표현과 같은 표상체계가 산출하게 되는 동일성의 사유 체계를 넘어 전시장에서 직접 몸으로 감각하게 되는 것들의 차이에 대해 경험해 보도록 만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승훈 (미술비평)
나의 프레인팅은 균열과 파열음, 얼룩과 상처, 찰나의 장면scene 으로부터 섬광을 찾아 물질화하는 것이다.
-권순왕
(權 純 旺) Qwon Sunwang
작가약력
단체전
작품
The hidden flux-chorus I-XV_172.5x400cm_2020-2023
물수제비 stone skipping_ 75X52.5cm_Drawin_2023
거울에 비친 실뭉치들 Ball of thread reflected in the mirror — 163x132cm_acrylic, oil on canvas_2022
제비꽃과 회오리 Violet and whirlwind — 116.8x91cm(50F)_acrylic, woodcut colle, oil on canvas_20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