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정상곤

동시대를 살아가는 정상곤 권여현 작가의 감각에 대한 다른 시각과 태도에 관하여
동상이감(同床異感)이라는 화두로 시작되는 이번 전시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정상곤, 권여현 두 작가의 개인전 형식의 전시를 연립전
방식으로 연출해낸 콜라보레이션 기획 전시이다. 이 전시는 두 작가가 동시대라는 같은 무대(Stage) 위에서 작업을 해 오면서 각기 감각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취하고 있으며 작업에서 보여주고 있는 부분들은 어떤 해석이 가능한 것인지에 대하여 두 작가를 심층적으로 비교하는 가운데 탐색해 볼
수 있는 점이 특징적이다. 먼저 정상곤 작가의 작업을 살펴보면 작가가 작업에서 다루는 대상들은 특별한 어떤 것이 아니라 흔히 자연의 풍경 속에서
접할 수 있는 것들임을 보게 된다. 그러나 작가의 작업을 자세히 살펴보게 되면 작가가 그려낸 것은 자연에서 보게 되는 평범한 대상일 뿐만 아니라
작가 자신에게는 그 대상 너머까지 감각하도록 만드는 특별한 어떤 것이 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점은 작업 가운데 내재되어 있는 여러
요소들로부터 발견할 수 있는데 예를 들면 작가는 작업에서 다루는 대상을 어느 지점에서는 조명을 통해 밝혀서 중심적 대상을 부각시키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작업은 어느 정도 지워내거나 감추기도 하면서 시선을 어느 특정한 대상에만 머물러 있게 하지 않고 주변으로 맴돌게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작업은 작가가 빛을 매개로 하여 그것의 대비를 조절하는 것을 통해 일차적으로는 대상과 관찰자 사이의 공간적 깊이를 더하거나 사물
주변을 좀 더 다르게 보이도록 만드는 작업이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이와 같은 작업 과정이 공간과 사물 자체에 대해
좀 더 관찰하도록 만들기보다는 오히려 어두워진 부분, 지워지고 흐려져 있는 부분으로부터 시각적 한계를 인식하도록 만드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는 뒤집어 말하면 이와 같은 작가의 작업이 관찰될 수 있는 영역 너머의 세계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된다. 이러한 작업 결과물은
대상을 중심으로 쏟아지는 빛이 비추는 범위나 빛의 양태에 따라 시각적으로 보이는 영역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일 수 있지만
이뿐만 아니라 작가가 빛과 관련하여 형상의 경계를 흐리게 하거나 사물의 배경을 유광과 무광으로 나누어 채색하는 것과 같은 회화적 기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작가는 작업에서 빛이 비춰진 범위와 회화적 처리 방식에 따라 종속적으로 사물을 인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시각적
감각의 한계에 대한 여러 양태를 그려내는 것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작가가 보여주고 있는 이 일련의 작업들은 결국 시선을
움직여 감각 너머의 것들에 대해, 그리고 그곳에 내재되어 있는 것들에 대해 감각해 볼 것을 권하는 작업으로 읽혀지기도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게 되면 작가가 그려낸 자연은 일상 속 평범한 자연이지만 동시에 그 자연의 대상 너머까지 감각하게 하는 특별한 어떤
것이 되고 있음을 알 게 된다. 그러므로 정상곤 작가의 작업에서는 눈에 보이는 대상뿐만 아니라 그 주변에서 감지되는 것들에 대해서까지 감각하고
읽어내는 범위를 열어놓아야 한다. 즉 <겨울 숲>이라는 작업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그의 작업을 깊이 있게 감상하기 위해서는 작업의 배경이
되었던 철원 DMZ 인근 지역이나 을씨년스러운 한겨울과 같은 컨텍스트 역시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작가는 자연 속 대상의
이미지에서 그것의 형상뿐만 아니라 역사적, 환경적 상황이 겹쳐져 있는 것들에 대해, 자연 속 대상에 잠재되어 있는 서사에 대해 이미지를 통해
표현해내고자 한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시각에 의하면 드러나 있는 현상적 이미지 너머에는 보이지 않는 세계, 즉 감춰져 있는 역사성을 포함하여
제의적이거나 주술적인 영역과 같은 비가시적 세계에 대한 숨어 있는 서사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들은 단지 그 서사적
흐름 속의 한 일면에 불과한 것이고, 하나의 흔적에 불과한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정상곤 작가가 그려낸 자연에 대한 작업들은 시각적으로
감각할 수 있는 가시적 영역 너머로 그 범위 밖에 있는 비가시적 영역에서, 그리고 사물들이 관계하고 있는 상태나 그것의 분위기에서 중층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들에 대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물들에 서려있는 각각의 이야기와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세계를 감각할 수
있도록 만드는 작업이 되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그가 제시한 ‘결핍의 풍경’이라는 명제를 통해 이러한 점들을 시사하고자 하였던 것 같다.
그러므로 정상곤 작가의 작업에 있어 감각의 문제는 시각적 인식 범주의 문제로부터 시작하여 시각 대상 및 시각적이거나 서사적인 컨텍스트 사이에서
분화되는 감각의 변주 등 다양한 층위로 확산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작가의 작업은 또한 보이는 대상에 대한 미적
감각뿐만 아니라 이를 포함한 인간이 접하게 되는 다양한 층위의 감각적 상황과 지각할 수 있는 영역의 분화 가능성에 대해 사유해 볼 수 있도록
만들고 있기에 정상곤 작가의 작업에서는 이러한 점들을 주목하여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이에 반하여 권여현 작가의 작업을 살펴보면 시각적 감각에 대한 인식 범주나 감각과 지각적 상황에 대한 담론보다는 감각의 조건 또는
감각 주체와 대상 사이에서 발생되는 상호작용 또는 실천적 행위 등으로부터 파생되는 존재론적 문제들에 대해 주목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는
작가가 현실을 인식하는 방식에서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정상곤 작가의 경우 바라보는 대상과 그 대상이
위치한 물리적 환경이나, 서사적 인과 관계로부터 사물에 대한 작가의 시선에 대해 읽어갈 수 있었던 것과는 대비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권여현
작가의 경우 작가가 인식하는 현실, 작가가 바라보는 세계라는 것은 작가가 이번 전시에서 표제로 지칭하고 있는 것처럼 낯선 숲, 낯선 곳이다.
작가는 그의 작가노트에서 이 낯선 곳을 유토피아를 대체한 헤테로토피아적 공간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는데, 이 낯선 세계는 일견 작가가
언급한 것처럼 해방구이자 도피처에 대한 표현으로만 한정하여 볼 수도 있겠지만 작가가 작업 가운데 그려내고 있는 금기시되는 행동, 비정상적인 행동
등에 한 걸음 더 가까이 가서 시선을 옮겨 고찰해 보게 된다면 작가는 자신이 발견하게 된 이 세계의 이미지와 구조를 자신의 회화적 수사법과
작업의 구조를 구축해내는 방식으로 치환하기 위해 도구적으로 사용한 것일 수도 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작가가 그려낸 과거 작업들을
돌이켜 보면 이전에는 다양한 신화적 서사와 내용을 차용하여 이미지화 함으로써 작업에서 이를 부각시켰다면 이번 전시의 경우 사회적 일탈과 금기를
너머서는 행위들을 밈(meme)과 같은 문화 전파 방식을 차용하는 것을 통해 부각시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작가가 다루는 밈의
이미지는 자신에게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여 만들어낸 도피와 해방을 향한 행위의 결과물이 되고 있었던 것이며, 그 자체가 동시에 권태롭고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비판과 저항의 몸짓이 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결국은 작가가 제시하고 있는 담론, 즉 이 낯선 사회로부터 발견하게 된
저항감 혹은 저항에 대한 담론이라는 것은 그의 작업 공간에서는 작가가 직시하게 된 감각에 대한 담론으로 변환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즉 작가는
감각의 문제를 자신의 작업 중심으로 가져오기 위한 하나의 기제로 작동시키고자 하였던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작가가 이 일련 작업 과정이
일종의 맥거핀(MacGuffin)이자 자신의 회화적 개념을 드러내기 위한 시각적 장치로 사용해 왔음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과거의 작업들을
살펴보면 이뿐만 아니라 작가는 마치 자동차 경주에서 엑셀레이터를 가속할 때 운전자의 심장은 자동차의 엔진과는 전혀 다른 체계 가운데 분리되어
있음에도 엔진소리가 높아질수록 심박수가 동조되어 높아지는 것과 유사하게 작가는 자신의 작업의 장 내에서 작업과 함께 외부로부터 서사적 구조와
그에 따른 이미지들을 가져와 환유적 알레고리를 만들어냄으로써 자신의 회화적 감각의 조건 또는 상황들을 개념적 구조 가운데 구축해가는 작업을
전략적으로 지속해 왔던 것을 볼 수 있다.
사실 권여현 작가는 자신의 회화에 대해 언급할 때마다 그의 관심사가 다양한 서사적 배경으로부터 차용된 이미지에 대한 것이라기 보다는
빠른 붓질과 맑은 색채와 같은 표현에 있다는 것을 자주 밝혀왔었다. 그러나 그가 작업에서 드러내 보여주는 세계의 이미지는 상당 부분 외부로부터
차용한 여러 가지 다양한 서사에 관한 것들로 비춰질 수 있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이번 전시의 경우에도 앞서 서술한 바와 같이 낯선 곳에서의
사회적 일탈과 금기를 너머서는 행위를 그려낸 작업들을 단순히 작가가 마주하게 된 헤테로토피아적 세계의 이미지로만 이해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많은 경우 그의 작업을 감상하게 될 때 그려진 이미지들에 조각조각 나눠져 있는 것으로 보이는 서사들을 조합하여 이를 해석해 보려는
오류에 빠지기 쉬운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작가가 자신의 작업들을 어떠한 서사적 맥락 이전에 “감각의 드로잉, 회화적 그림”이라고 부르고
싶다고 했던 언급에 대해 그의 작업을 감상할 때마다 실제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바꿔 말하면 이번 전시에서 새로 선보이는 작업들은 단지
일탈자들의 인스턴트적 욕망과 그것의 해소 방식이 그려져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는 작가가 말한 것처럼 그가 그려낸 형상적 이미지와 서사적
내용이라는 것은 그저 맥거핀(MacGuffin)에 불과한 것일 수 있다는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작가가 그려낸 것은 캔버스에
붓질을 해가며 느끼게 되는 마찰력에 대한 느낌과 감각을 사회적 일탈과 저항감 또는 저항의 담론으로 덧씌움으로써 자신의 몸이 감각하게 된 세계에
대해 이를 환유적 방식으로 증폭시키고 이로부터 감각의 내용들을 전해주고자 한 방법의 일부분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부분은 특히 권여현 작가가 자신의 작업에서 이와 같은 작업을 감각 주체와 감각 대상인 세계 사이에서 그 접촉면이라 할 수 있는
몸의 경계에서 감각되는 것들로부터 시작하고 있다는 점을 보면 작가의 작업 태도와 작업 내용이 어떠한 토대로부터 시작된 것이고 작가가 지향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확인해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작가는 그의 회화 작업에서 몸의 연장이라 할 수 있는 붓과 그것의 대상인 캔버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들, 즉 작업 행위 과정에서 몸의 움직임으로부터 파생된 감각들에 대해 작가 스스로 각성적으로 인식하게 되면서 세계 가운데
감각 주체와 감각 대상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들, 즉 작용, 반작용의 반응에 비유될 수 있는 여러 차원의 상호작용이 그대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낯선 세계 속에서도 연장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작가는 이를 다시 작업에서 회화적 방식에 의해 말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부분은 자신이
마주한 세계 속에서 경험하게 되었던 것들과 그로부터 파생된 작업의 내용들을 감각의 문제로 환원하고 번안해내는 흥미로운 작업 방식이 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결국 빠르게 붓질을 해내고 맑은 색채를 표현하는 지극히 단순해 보이는 일련의 회화적 행위와 작업 결과물이
작가에게는 주체로서 살아있고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해내는 실제적 방법이 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즉 작가가 작업 행위를 통해 찰나와
같은 짧은 시간 가운데 시각, 촉각 등의 공감각적 자극을 스스로 경험하게 되는 것, 그리고 그 작업 행위의 과정과 함께 결과물인 이미지들이
현상적으로 감각되고 있음을 경험하게 되는 것과 같은 일들은 사실 유한할 수 밖에 없는 것이기에 작가가 행하는 작업 행위는 임시적인 생을 살아가고
있는 존재자로서 현전에 대해, 실존적 존재에 대해 체험적으로 알아갈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결국 작업
행위를 하는 그 짧은 순간순간의 경험들은 시공간적 한계를 영원히 벗어날 수 없고, 그렇기에 유한한 존재로서 불안할 수 밖에 없는 존재인
작가에게는 오히려 도피처이자 해방구의 기능을 하는 헤테로토피아가 되고 있었던 것이다.
정상곤 작가가 감각의 한계 너머로 또 다른 감각의 세계에 대한 시각을 열어 보여 주었다면 이처럼 권여현 작가는 감각의 순간에 종속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는 존재적 한계의 경계면에서 감각의 조건이자 존재의 조건에 대한 이야기들을 되뇌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종합해
비교해 보면 정상곤 작가는 세계 속에 감춰져 있는 것들을 들춰내어 이전에 보이지 않았던 것들, 감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환기시키고 이를 통해
감각의 범위를 넓혀 줌으로써 비가시적 영역들과 관계하게 될 때 우리가 감각하는 내용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가를 보여 주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며, 이로부터 인간의 시각적 감각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권여현 작가는 그의 작업에서 오히려 빈번히
감각의 환영들을 소거해 버리고자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외부로부터 차용한 서사를 다양한 환영의 이미지로 형상화하여 그리는
행위를 수없이 반복해냄으로써 세계와 마주하여 존재하고 있다는 것, 이렇게 살아있으며 실존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 보여주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결국 감각하는 주체이자 존재자로서 그가 마주한 실존적 상황에 대해 회화적 방식으로 다시 문제를 던지는 작업이 되고 있다. 인간은
감각이라는 수용 방식을 통해 세계를 만나게 되지만 두 작가가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이 감각에 대한 시각 또는 태도의 차이에 따라 심지어 다른
세계를 살아가고 있는 것과 같은 상황을 맞이하게 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볼 때 정상곤 작가와 권여현 작가는
이렇게 각기 독특한 방식으로 감각과 관련된 문제에 대하여 작업을 해오고 있지만 서로 다른 토대로부터 시작한 작업은 결과에서 극명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렇기에 이번 전시는 감각이라는 지점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그 토대가 되는 지점으로부터 다시금 점검해 볼 수 있는
하나의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고 본다.
이승훈 (미술비평)
정 상 곤 Chung, Sanggon
겨울 숲(194x130cm)/2023년作
12월 4일 일요일, 종강을 바로 앞두고 방문한 철원 DMZ 인근 지역의 풍경은 을씨년스러웠다.
초겨울 나무들은 이파리를 떨군 채 각종 넝쿨식물과 얽히고설켜 좀처럼 어떤 것이 이쪽 나무 잔가지이고 어떤 것이 다른 나무의 것인지 온전히 구분되지 않았다.
겨울 숲은 얼음장 같이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전체적으로 색 바랜 어두운 보라 기운을 띠었고, 듬성듬성 무리 지어 달려있는 다양한
씨앗들도 거의가 크기도 작고 색도 비슷하여 눈에 띠지 않았다.
다만, 아직까지 달려있는 생기 잃은 이파리들의 누런 색들이 빛을 받아 다양한 색깔로 밝게 빛나고 있었다.
탐방로를 따라 이동하면서 보이는 철조망 위에 붙은‘지뢰’알림 표지판이 이곳이 민간인 통제구역임을 상기시키고 있었다.
가끔씩 철조망 안쪽에 나무와 나무 사이를 끈으로 둘러친 일정한 구역들이 있었는데, 그 부분만큼 지뢰 탐사를 하고 그 곳에 필요한 물품을 야적하거나
가설물들 짓거나 한다고 했다. 또 한가지 나의 눈에 들어 온 것은 탐방로를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서있는 전봇대였는데,
철원군24, 철원군25, 26, 52. 숫자가 표기된 전봇대는 아마도 전국 어디에나 있었겠지만 이 날 나의 주의를 끌었다.
작업실로 돌아와 겨울나무 풍경을 그린다. 나뭇가지 사이 임시로 둘러친 끈이 있는 풍경을 그리면서 (임시로) 둘러친
노란 테이프는 일상적인 풍경 그림에 그 어떤 역할을 부여하였다. ‘임시’ 혹은 ‘잠정적’ 아라는 어휘 자체가 주는 긴장감이랄까...
잡목과 넝쿨식물들이 뒤엉킨 풍경은 섬세한 시선을 보내야 겨우 하나하나의 개체가 보인다.
그리고 그것들을 그리기 위해 가려지고 끊어진 윤곽선을 따라 연결하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회갈색 나무를 그리고 지우고 또 다시 그린다.
세부에 몰입해 그릴수록 그림은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잔가지 모든 세부들이 나의 몸에 각인되어 보지 않아도 그릴 수 있을법하다.
그림은 애초 의도와 달리 겨울 숲 잡목들의 잔가지를 표현하면서 ‘아름답게’ 보인다. 작업실 안에서 그리는 동안 서정성이 그림에 들러붙었다.
(2023.1.17)
페인팅 <어두운 숲, 2019> 연작에서 사용한 Burnt carmine(붉은 색 천연색소로 연지벌레에서 짜낸 염료로 만든 양홍을 말함)은
어둠 속에서 스스로 빛을 발하는 물질로서의 의미를 담고 있다.
빛을 잃은 숲의 풍경일지라도 그 어떤 밝음 자체를 포기 할 순 없기에 그림을 그리며 그 제단에 카민 색을 희생의 의미로 선택하여 올린 것이다.
밤 풍경 그림 위에 지우듯 덧그린 덤불 숲 제주 다랑쉬 풍경, 빛의 과다 혹은 밝은 녹색으로 그린 그 덤불 숲 사이사이에
붉은 색 카민으로 그린 밤 풍경이 흔적으로 남겨져 있다. (2019)
낯선 숲의 일탈자들 Deviators in Heteroclite forest /
낯선 곳의 일탈자들 (감각의 문지방) Deviators in Uncanny Place. (Threshold of sense)
1
어떤 일이 생길 것 같은 장소가 있습니다. 익숙하거나 편하지 않은, 낯선 곳에서 우발적인 일이 생길 것 같은 곳입니다.
낯선 숲은 유토피아가 현실 세계에서 실현되는 장소입니다. 우리가 결코 만날 수 없는 숲이며, 두세 가지의 다른 공간이 조합된 가상의 장소입니다.
공익과 절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가치 때문에 희생되고, 생략되고, 반올림되지 못한 채, 소멸되어야 했던 것들이 저장된 곳입니다.
이성이 지배하는 장소에 대한 감각의 비자발적이고 하위문화를 대면하는 장소입니다. 일탈자의 행위는 이상하고 엉뚱하고 찌질하고 이유 없고 반항적입니다.
인간의 욕망이 리비도를 타고 지킴이의 감시를 피하려고 가면을 쓰고 꿈속에서 소망을 충족하듯이, 일탈자는 밈의 전달체계에 올라타서
우스꽝스러운 행동으로 위장하여 현실의 규범을 속이려 합니다. 그들의 행동은 억압된 욕망과 감각을 대신 표현해주는 우리시대의 히피적 기호입니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많은 문제가 노출됩니다. 그 문제들은 선별적으로 폐기되거나 무의식의 심연 속으로 고착되어 감시받게 됩니다.
고착된 욕동이나 욕망의 찌꺼기들은 짤이나 밈같은 엉뚱한 행동으로 표출할 수밖에 없습니다.
욕망의 돌파구는 늘 은밀하고 익숙한 낯선 위장된 장소입니다.억압된 것들은 성적이거나 비도덕적이거나 반종교적이거나 반사회적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인간적인 것들인 경우가 더 많을 것입니다. 억압을 빌미로 편집당해야 했던 감각 덩어리들....
국가적, 사회적으로, 우리의 행동반경으로, 착한 몸을 만들어서 개인의 몸을, 이제는 의식과 감각까지 침투해서 들러붙은 그림자 같은
감시자를 속이는 방법은 일탈자가 되는 길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내 그림에서 일탈자들은 해변에서 비상식적인 행동을 가감 없이 합니다.
금기를 세상에 표출하는 반항의 표현으로 엉덩이 욕을 하거나, 한쪽 가슴을 드러내 보임으로서 신체 노출언어의 욕을 합니다.
좌절된 욕망, 미끄러진 욕망의 집단적 해소는 히피족, 베트남 전쟁 반대운동, 프랑스 6.8학생운동이 좋은 사례입니다.
내 그림속의 인물들은 이런 맥락에서 나체로 물속에 뛰어들거나, 성인이 되어도 어린이처럼 유치한 행동을 하거나, 껌을 뱉거나, 팬티를 반쯤 내리거나,
무표정한 얼굴로, 성난 얼굴로 돌아보거나.,풍선껌을 불면서 불량함을 표출하거나, 개의치 않음을 주장하거나, 사소하게 낄낄거리거나 남들의 시선을 받으면서
그 시선에 대한 역공을 가하거나, 길거리서 음료수를 병 채 마시거나-민망함을 의도적으로 유발하여 스노비즘 snob 을 공격하는 행위-,
정장 차림으로 오피스에서 슬리퍼를 신거나, 젠더 교육에서 금기시하는 쩍벌하거나, 묘한 성적 유혹 행위를 통하여 가장 중심적으로 금기시되는
사회 관념의 성적 금기를 의도적으로 위반하거나, 우스꽝스럽게 만화 따라 하기 행동을 하거나, 키덜트적 행위를 통하여 충족되지 못했던 유년 시절의
욕동을 레트로 retro 하거나, 히피적 일탈을 통하여 기성사회를 조롱하고 저항합니다. 그림속의 일탈자들은 밈meme적 행동, 짤적 행동,
신화적 행동을 통하여 부조리한 사회를 비판합니다.
2
내가 중시여기는 회화적 화두는 붓질의 빠름과 얇은 막을 형성하는 스트로크와 맑은 색채입니다. 여러 번 묘사하여 만들어낼 형태를
한두 번의 터치로 구현하는 것이 가장 중점적인 표현 방법입니다.
인체의 묘사에서는 해부학적 지식과 붓의 특성과 붓의 배면, 붓의 말단의 특성을 잘 알아야 합니다. 붓의 움직임에 따라서 뼈대가 되기도 하고 피부가 되기도 합니다.
형태의 묘사에서는 게슈탈트이론을 적용하여 몇 번의 터치만으로 대상 형태를 가장 특징적으로 표현해야 됩니다.
형태는 나에게 있어서 붓질 표현 장입니다. 물감을 여러 번 겹쳐서 원하는 색채를 내지 않아도 한 번의 붓질에서 붓의 뒤틀림과 손목의 힘 조절만으로
다양한 변주의 색채를 구사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림을 잘 그린다 라는 것은 그 테크닉이나 재현의 문제가 아니라 재료와 붓을
어떤 식으로 스타일 있게 운용할 것인가에 달려 있습니다.
나의 붓질은 혼을 담아서 한 획, 한 획 구도하듯 수행하는 것이 아닌, 그저 무심한 듯 툭툭 쳐버리는 필법을 구사합니다.
붓질의 간결성과 빠름과 이미 머릿속에 구성되어 있는 사물에 깃든 기운생동이라는 것은 작가가 표출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관람자가 찾고자 해서 되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작가의 역량이 간결하게 녹아 있을 때 혹은 또 그것이 사회적인 미적요구에 부합하여 현대적인 조형성을 갖고 있을 때 관람객은
그 작품을 보고 살아 움직임을 느끼게 됩니다. 기운생동의 묘법인 것입니다. 한 번의 붓질에서 색채의 다양한 스펙트럼이 표현되고
형태의 경계선은 흐리거나, 선명하게 드러나야 됩니다. 나는 이것을 감각의 드로잉, 회화적 그림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감각적 형태라는 것은 딱딱하지 않으며 유동적이고 변용 가능하고 액체적인 형태를 말합니다.
그러나 그 형태가 너무나 허물어져 형태의 구성 최저점에 도달하지 못하고 형태의 속성을 잃어버린 질료의 단계가 되는 것은 거부합니다.
물감은 기름이나 물을 매개로 번지거나 고착됩니다. 그 우연성의 붓질로 인해 그림은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어야만 됩니다.
감각적으로 색채는 칠해져야 합니다. 농도와 명도와 채도의 차이가 극히 미세한 변화로 구성되어
관람자의 눈도 역시 예민해야 작품과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접하는 색채들은 대부분 배면에서 발광하는 빛과 관련 있습니다. 뒤쪽에서 발광하는 색채는 맑고 얇고 투명합니다.
현대적 색채는 물감의 혼합의 회색조보다는 빛의 혼합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투명한 흰색 조 에 가깝습니다. 일탈자들을 표현하는 색칠은 얇고 맑고 투명하고 재빨라야 합니다.
색채의 선택은 형태와 무관합니다. 단지 그것들은 색채가 칠해질 영역에 따라서 조화롭게 구사 될 뿐입니다.
노랑머리를 가진 사람은 더 이상 서양인이 아니며 흰 피부와 구리색 피부 역시 인종을 표현하는 색채가 전혀 아닙니다.
그저 사물의 층위를 표현하는 조형장치일 뿐입니다. 특정인이나 특정 상황을 추측하는 것 역시 나의 맥거핀 세계일 수 있습니다.
의미와 형태와 색채의 따로 구별되지 않는 무간지경처럼, 아직 완전히 깨어나지 못한 꿈과 현실의 끝자락에서 꿈꾸는 잔몽의 세계처럼,
내 그림속의 인물들은 낯선 숲에서는 감각의 해방과 자유를 갈구하는 신호는 보내고 있습니다.
누군가 내 절실한 신호를 가벼운 웃음으로 넘기지 말고 내게 다가와서 깨워달라고 손짓합니다.
가위눌린 일탈자의 신호를 웃고 지나가지 말고 깨워달라고 우리에게 신호를 보냅니다.
권 여 현 (權 汝 鉉) / Kwon, Yeo-Hyun
1987 서울대학교 대학원 서양화과 졸업
1985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
現 在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교수
작가약력
수상
2018 한국미술평론가협회 올해의 작가상
2005 제5회 하종현미술상
1995 제1회 한국일보 청년작가전 우수상 수상 (백상 갤러리)
1991 제10회 석남미술상 수상
1990 제13회 중앙미술대전 우수상 수상 (호암갤러리)
1986‘86 동아미술제 동아미술상 수상 (국립현대미술관)
1984 제9회 창작미협 공모전 대상 수상 (미술회관)
개인전 (46회)
2023 일탈자의 장소-갤러리 인사아트. 서울
2022 현대의 신화-JJ 갤러리. 서울
2021 기억의 공작소-눈먼 숲의 일탈자들. 봉산문화회관 대구
2020 낯선숲의 일탈자들. 갤러리 희. 안동
2020 눈먼 자의 숲에서 메두사를 보라. 갤러리 희. 안동
2019 눈먼 감각, 미끄러운. 갤러리 더플럭스. 서울
2019 눈먼 자의 숲에서 메두사를 보라. 보혜미안갤러리. 서울
2018 ‘Veiled Ophelia in Ulysses Forest’통인갤러리. 서울
2015 The pond of Ophelia 금산갤러리, 서울
2014 ‘Ophelia in Forest’Faculty gallery UCSC. CA. USA
2013 ‘맥거핀 디자이어’OCI 미술관. 서울
2011 ‘코나투스의 체계’ITB 갤러리. 반둥, 인도네시아
2010 ‘마법풀기’더 컬럼스갤러리. 서울
2007 ‘Syntagm-Roleplaying’씨떼 데자르. 파리, 프랑스
2004 ‘동서고금을 가로 지르다’사비나미술관. 서울
1994 ‘What Constitute I’예술의 전당. 서울
1988 ‘실존공간’토갤러리. 서울
퍼포먼스 (6회)
2009 불의모험“구도자”(제5회 국제도자비엔날레 국제 퍼포먼스)
소 장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후쿠오카 문화재단. 선재 현대미술관 등
그룹전 (460여회)
2022 빛 소리 & 광화문광화문국제아트페스티벌. 세종문화회관. 서울 /
선화랑개관45주년기념전-달의 마음, 해의 마음. 선화랑. 서울 / 테이스티a마켓 아트스페이스 휴.SM디자인 /
14인의 대한민국 정예작가전. 인사이트프라자갤러리 / 1981전. 베카갤러리 / kiaf. Coex hall (JJ 갤러리)
2021 아세아 국제전. 쿠슈, 일본 / kiaf. Coex hall (금산갤러리)
2020 평화,바람이분다. 오두산 전망대. 통일부 / 여수 국제 미술제-해제 금기어. 여수엑스포 전시장
2019 Hearing & sensing 경희대박물관. 서울
2018 경계의 통로. 산티아고 호텔 레지던스. 필리핀
2017 청년의 초상.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서울
2017 월곡-달빛정원을 걷다. 권진규미술관. 춘천
2016 달은, 차고, 이지러진다. 국립미술관 과천30년 특별전. 국립미술관. 과천
2016 아름다운 순간. 대전시립미술관. 대전
2014 ASIA국제미술전람회 Rajchadamnern Contemporary Art Center, Bangkok, Thailand
2012 한국-대만교류전, 한국현대미술전. National Taiwan museum of fine art. Taichung. Taiwan
정 상 곤 (鄭 尙 坤) / Chung, Sanggon
1989~1991 서울대학교 대학원 서양화과 졸업 (판화전공)
1983~1987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주요 개인전 (1990~2022 개인전 총 42회)
2022 칼리파갤러리 (페인팅)
2021 갤러리아트로직 (페인팅)
2021 Novosibirsk State Art Museum, Russia (판화)
2021 갤러리더플럭스 (페인팅)
2020 갤러리더플럭스 (페인팅, 판화)
2019 더숲갤러리 (페인팅)
2018 예술가방 (페인팅, 판화)
2017 통인옥션갤러리 (페인팅)
2016 샘터갤러리 (판화)
2016 갤러리3 (페인팅)
2015 하슬라미술관 (페인팅)
2014 이마주갤러리 (페인팅)
2013 Lee galerie BERLIN, Berlin, Germany (페인팅)
2013 샘터갤러리 (페인팅)
2012 금산갤러리 (페인팅)
2011 빛뜰갤러리 (페인팅)
2010 가산화랑 (페인팅)
2008 Folio Gallery, Texas, USA (디지털프린트)
2004 Gallery 21+Yo, Tokyo, Japan (디지털프린트)
2003 금산갤러리 (디지털프린트)
2001 우덕갤러리 (디지털프린트, 영상)
2001 Tallinn City Gallery, Tallinn, Estonia (디지털프린트)
주요 단체전
2021 서울아트쇼 플레시아트 초대작가(코엑스) / 대구아트페어(청담갤러리)
2020 자연:동해와 독도(한가람 디자인미술관) / 판판판(서호미술관) / 한국현대풍경화의 국면(최북미술관) / 전망(이천시립월전미술관)
2019 Spatial Transformations(Studio Anise, Soho, NY) / 자연을 말하다(리나갤러리, 서울)
2018 독도미학(세종갤러리, 상해미술관) / 도시의 외곽(해움미술관, 수원) / 그들의 10년(드림박스, 분당) / 판화하다_한국현대판화 60년 (경기도미술관)
2017 층과 사이(국립현대미술관, 과천) / 2인전_Duo, 만들다 발견하다(갤러리 시작) / 해피바이러스(설미재미술관) / Korean Contempo-rary Art in New York(뉴욕한인회관 본관, 뉴욕) / 회화정신-30년에 답하다(동덕아트갤러리) / 산수심원기(汕水尋源記)(서호미술관) /
2인전_자연스러운 태도(아트앤컴퍼니인터네셔널) / AHAF SEOUL 2017(동산방화랑 부스)
2016 헌정(獻呈)-기리며 그리다(학고재) / Red(갤러리 마롱) / 식물환상(경기대학교 호연관갤러리)
2015 scope miami 2014(Kashya Hilderbrand Gallery부스)/ 익산-성남교류전(익산예술의전당 미술관2층)/ AHAF Seoul(콘레드 호텔, 금산갤러리부스)/ KIAF/15(코엑스홀, 갤러리 아트비앤)/ 아트부산(BEXCO, 금산갤러리부스)/ 화랑미술제(금산갤러리부스)/ 두만강 국제예술축제(두만강문화종합전시관, 중국)/ 회화 6인전(오거스트하우스)/ 정상곤.이종송 초대전(톨레랑스 갤러리, 대구)
2014 풍경하다 Nowhere Land(3 갤러리) / interpret + 바라보기(Gallery Far Beyond) / Making Print : Print Making(KDB대우증권 아트스페이스)
2013 판화의 유쾌한 변신 Cool Transprint(서울시립미술관 경희궁분관) / 몽중삼맥 夢中三脈(KDB대우증권 아트스페이스) / Makers in Print: International Exhibition(Layton Gallery, WI, USA) / AHAF HK 2013(금산갤러리 부스, 홍콩) / 현대작가展(동덕아트갤러리) / 박물관 이미지(동덕아트갤러리)
2012 KIAF/12(코엑스홀, 금산갤러리부스) / 기호와 이미지(NH Lakeside Art Gallery) / The Big Ones(International centre of Graphic Arts, Slovenia) / 판화와 소통(서울시립미술관 경희궁 분관) / 현대작가展(동덕아트갤러리) / Hotel Art Fair - New Caledo- nia(Le Meridien Neumea, New Caledonia) / AHAF Seoul 2012 / 다름의 공존(현갤러리)
2011 15th Tallinn Print Triennial(Kumu Art Museum, 탈린, 에스토니아) / KIAF-11(코엑스홀, 금산갤러리부스) / 판화와 정보: 한국현대 판화의 새로운 동향(서울시립미술관 경희궁 분관) / 감각의 브리콜뢰르(진천생거판화미술관) / 인간, 환경, 역사가 만나다(양평군립미술관)
2010 KIAF(가산화랑, 금산갤러리) / 호텔아트페어(신라호텔 객실, 금산갤러리)
2009 Coner to Coner: Urban Poster Explosion(Columbia College, 시카고) / 모호한 층 애매한 겹(갤러리 룩스)
2008 신소장품展 2007(서울시립미술관)
2005-2008 서울판화(토포하우스, 모란갤러리, 사이아트갤러리)
2003 한국현대판화모음:소장품을 중심으로(국립현대미술관) / 모호한 공기(유아트스페이스)
2002 국제환경미술전-The Call of the Thod(예술의전당)
2000 풍경과 장소 유토피아 & 아토피아(경기문화회관)
주요 수상
2018 노보시비르스크 국제판화 트리엔날레 (러시아) Grand Prix
2007 올덴브르크 국제판화 트리엔날레 (독일) 올덴부르크시장상
1999 류블랴나 국제판화 비엔날레 (슬로베니아) Grand Prix
1998 탈린 국제판화 트리엔날레-“Touch” (에스토니아) Grand Prix
1997 크라코프 국제판화 트리엔날레 (폴란드) 심사위원상
1992 동아미술제, 동아미술상
1990 대한민국 미술대전, 우수상 / 공간국제판화비엔날레 (서울) Grand Prix / 한국판화가협회공모전, 우수상
주요 작품소장: 국립현대미술관, 경기도미술관, 박수근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한국산업은행분당, 서울대학병원, 국립현대미술
관 미술은행, 진천생거판화미술관, 박수근미술관, British Museum (영국), The Art Museum of Estonia (에스토니아), Municipal
Museum of Arts (헝가리), Novosibirsk State Art Museum, (러시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