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살_pen on canvas_259.1x181.8cm_2022




푸른 죽음과 검은 생명_pen on canvas_130x130cm_2022
가장 아프고 외로운 곳으로의 초대 혹은 소중한 이들을 향한 대화
박희현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캔버스 위에 펜으로 자연과 동물 그리고 인간의 모습을 상상적으로 그려내는 독특한 형태의 드로잉 작업들을 보여주게 된다. 그가 그려낸 것들은 평소 흔히 접할 수 있는 자연의 일부분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가 표현한 것들에서는 평화롭고 안정된 느낌보다는 괴기스럽고 섬뜩한 느낌이 먼저 다가온다는 것을 어느 순간 느끼게 된다. 이는 작가가 그려낸 것 중에는 뱀과 같은 파충류나 조류와 같은 것들이 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특별히 이 동물들의 몸체 일부가 확대되어 있고 그 확대된 곳에는 알 수 없는 뾰족한 것들이 수없이 튀어나온 것처럼 보이도록 그려져 있거나 발톱과 같은 부분이 더 날카롭게 보이도록 강조되어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 외에도 작가가 그려낸 인물의 경우도 소녀의 모습으로 보이지만 얼굴 전체가 검게 색칠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그 형태나 표정이 전혀 보이지 않게 표현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 괴기스럽고 섬뜩한 느낌을 주는 것 같기도 하다. 작가가 그려낸 것들은 공포 영화 혹은 그로테스크한 초현실적 회화 속에서나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독특한 장면처럼 보이는 상황이기에 자연을 평화롭고 안정된 이미지로만 기억하고 있었던 이들에게는 그 기억에 일정 부분 균열을 가할 수도 있겠지만 작가는 이 평화롭고 안정된 곳을 향해 문 두드리며 무엇인가 말을 걸고자 하는 것 같다.
작가노트를 보면 작가에게는 이러한 작업이 자신 삶 가운데 경험하게 되었던 아픈 기억들과 관련된 것이며 그 기억은 5살 때부터 시작된 성폭행과 성희롱 그리고 2차 가해 등 말로 다하기 어려운 것들이었다는 언급이 있다. 그런데 작가는 이와 같은 기억을 숨기기 보다는 작업을 통해 드러냄으로써 자신에게 그리고 자신과 같은 기억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 치유와 위로가 되기를 바라면서 작업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사실 박희현 작가의 작업을 살펴보면 자주 피부 속 깊은 곳까지 찌르거나 생채기를 낼 수 있을 것 같은 날카롭고 거친 느낌의 특이한 형상이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아마도 작가의 기억에 남아있던 내적 상처의 모습이었던 것 같으며 이러한 부분들이 그의 작업에서 외부로 강렬하게 표출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작가는 자신에게 상처 난 곳, 곪아 가는 곳이 있었으며 그 썩어가는 곳 안에 담긴 고름과 같은 것들을 이제 작업을 통해 몸 밖으로 쏟아내려 했던 것 같다. 아픈 기억을 덮어두기 보다는 상징적이며 감각적인 방식의 이미지 언어로 외부 세계를 향해 드러내 보이고 이를 해소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 이미지들은 어떤 이들에게는 흉측하고 소름 끼치는 형상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이를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바라보아야만 아직도 인간 사회에는 아직도 야만의 실상이 여러 곳에 잔존해 있음을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음을 작가는 말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작가는 이를 그의 작업 가운데 이미지로 번안하여 조형 언어적 방식으로 표현해 냄으로써 간접적으로나마 그의 작업을 보는 이들도 작가가 경험하게 되었던 이 세상에 상존해있는 어두움의 일부분이라도 함께 느끼고 감각할 수 있기를 원했던 것 같다.
작가는 이번 전시의 주제를 “그때와 지금의 너에게”라고 하였다. 이는 그림 속 얼굴이 지워진 소녀에게 건네는 말로 들리기도 하는데 이 말이 의미하는 것은 작가가 1인칭으로서가 아니라 2인칭의 어떤 대상에게 이야기하는 방식을 취한 점을 근거해서 보게 되면 한편으로는 이제 자신을 객관화하고 대상화하여 바라볼 수 있을 정도로 변화된 시점을 갖게 되었다는 의미로 읽혀지기도 하고, 다른 한편 그의 작업을 보는 이들도 소녀의 이미지 중 얼굴만 검게 지워진 부분에 자신의 얼굴을 대입하여 각기 자신이 경험한 일로 다시 감각해보고 다시 읽어 볼 것을 제안하는 것으로 읽혀지기도 한다. 작가는 죽음과도 바꿔야 할 것처럼 느껴졌던 소름 끼치는 순간들을 경험하게 되면서, 적어도 사람이라면 짐승의 세계, 야만의 세계와는 구별되는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존엄성이 있다는 것을 더욱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던 것 같다. 작가는 이처럼 인간의 가장 소중한 것에 대해 느끼고 알게 된 만큼 더욱 그의 작업을 감상하는 이들과도 함께 공유하기를 희망하게 되었던 보인다. 그래서 작가는 평화로운 곳이 아니라 어둡고 흉측한 곳, 외롭고 고립된 것 같은 느낌 속으로 관객의 눈과 마음을 초대하여 그곳에서 각기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면서 우리가 그 야만의 세계를 직시하고, 또 함께 그 세계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소망하는 작업을 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인간은 누구나 몸에 상처가 날 수 있고 아플 수 있는 존재이다. 그리고 인간은 그처럼 아플 때 혹은 죽음에 가까이 가보았을 때 우리의 생명과 존재의 소중함을 더 깊이 느끼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그의 작업을 통해 죽음과 같은 아픔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토록 아픈 만큼 우리 인간은 소중하다는 것을 동시에 마음을 담아 말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때와 지금의 너에게 말이다.
이승훈 (미술비평)
아무 것도 모르고 고통을 참아야 했던 내 어린 날부터 겨우 목숨이 붙어있던 시절, 그리고 그 숨을 끊어버리려 노력했던 순간들. 그 시간들 속에 살고 있을 수도 혹은 나의 지금의 순간에 살고 있을 수도 있는 너에게 말한다. 나도 너와 같은 시간, 사건 속에 살았다. 5살부터 성폭행을 당하기 시작했고 수 많은 성폭행과 성희롱을 당했다. 2차 가해는 수없이 많았다. 자살시도는 끝도 없었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모든 것들에 대해 말하는 것을 역병 취급하는 세상에서 살아왔다. 또는 누군가는 그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세상에서 살아왔다. 그래서 일까. 살아가는 것 자체가 힘이 들어서 모든 것을 놓아 버리는 것이 답인 것 같을 때가 길었다. 힘들다고 말을 하고 싶어도 말조차 할 수가 없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지금의 나는 작업을 통해 감정들을 토해 낸다. 슬픔, 고독, 말할 수 없을 만큼 깊은 마음, 외로움, 마음이 오갈 곳 없던 시절, 괴로움 그리고 희망 등을 그러낸다. 여러 상징들을 사용하며 날카로운 펜의 예리한 혹은 거친 질감을 살려 낸다. 주로 흑백이지만 몇 개의 컬러로 의미를 더한다. 나는 이렇게 내 방식으로 내 감정을 말한다. 그 시절의 나는 이 괴로운 감정들이, 지금보다 더 소용돌이 치던 시절이었다. 아직도 나는 이 감정의 늪 속에서, 트라우마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렇지만 그 시절에 누군가 나에게 이 마음을 공감해주고 이해해주고 내가 혼자가 아니라고, 나만 그런 경험으로 이토록 괴로운 것이 아니라고 말해줬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나에겐 그림이 있지만, 네가 그 감정들이 쌓여 가고만 있다면 혼자가 아니라는 말이 듣고 싶을 거라 느꼈다. 너는 나의 어느 시절에 있을지 모르지만, 또 다행히 그 어느 시절이 아니더라도 마음이 힘들다면 나의 고백과 같은 그림이 마음의 위로가 된다면 좋겠다. 그래서 그 때와 지금의 너에게 내가 어떤 마음의 울림을 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2022. 박희현
박희현 Huihyeon Park
작가약력
개인전
작품
알고 싶었어_pen on canvas_130x130cm_2022
더미들 위에서_pen on canvas_112x112cm_2021
푸른 죽음과 검은 생명_pen on canvas_130x130cm_20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