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성
Kim MiSung
전시 1 · 작품 7
나는 존재를 증언하는 행위로서의 예술을 믿는다. 회화는 단순히 이야기를 전달하거나 사실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로 설명되지 않는 감정의 층 위를 드러내는 장치다. 나에게 예술은 말하지 못한 내면의 시간을 비추는 조용한 빛으로, 작업속에서 존재의 여백을 포착하고 싶었다. 이것은 내가 선 택할 수 없었던 삶의 조건들 속에서, 존재 로서의 감각을 지켜내기 위한 몸짓이었다. 이 것은 내면에서 시작된 것도, 외부에서 제시된 것도 아니다. 그냥 그 사이에서 가능한 것을 붙잡아온 과정이다.
나는 기억을 회상하기보다, 감정이 나를 찾아올 때까지 기다린다. 그 기다림은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기도 하다. 나의 작업은 너무 사소해서 지나치기 쉬운 보편적인 감정의 결(가상의 기억)을 고전 유화의 형식, 팝 초현실주의 상상력, 그 위에 디지털 뉴미디어 픽션의 감수성과 결합한다. 이를 통해 존재한 적 없는 것들의 기억에 대한 기록을 시도한다. 기억되지 않았지만 모두에게 익숙한 감정의 구조를, ‘버추얼 노스텔지어 (환상적인데 믿을 수 있는 정적 서사, 낯설지만 무섭지 않고 동화처럼 수용되는 감각, 허구지만 실존하는 감정처럼 느껴지는 세계)’ 를 통해 호출하고 싶다.
또한, 이번 전시는 유화로 제작된 회화 이미지를 기반으로, 디지털 툴에서 프레임 단위로 재 편집한 짧은 애니메이션 작업도 함께한다. 회화의 물질성과 디지털의 움직임을 병치함으로써, 하나의 이미지가 ‘정지와 운동’, ‘표상과 변형’ 사이를 부유하게 하여, ‘회화와 영상’, ‘아날로그와 디지털’, ‘기억과 허 구’ 사이에서 감정의 잔여적 시간에 대한 경험을 제안한다. 관람자가 자신의 감정적 경험과 연결되는 감각적 고리를 발견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기억 조 각을 발견하거나 전혀 새로운 감정의 문을 열 수 있길 바란다.
나는 작업을 통해 '가상기억의 패스티스’를 시각화하고, 아직 오지 않은 기억의 가능성을 만들어내고자 한다. 그것이 곧, 나의 존재가 세상에 흔적을 남기는 방식이다.
부재로부터 드러나는 존재적 위치, 또는 현전을 인식하게 하는 조건에 대하여
김미성 작가는 이번 전시의 주제로 ‘Virtual Nostalgia’라는 매우 난해해 보이는 명제를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작가는 이 난해하게 보이는 주제의 번역을 “존재한적 없지만 사라지지 않은 체온에 대하여”라는 말로 풀어내고 있다. 그런데 작가가 선택한 노스텔지아(Nostalgia)라는 말은 귀향, 귀환을 의미하는 nostos(νόστος)와 고통, 슬픔을 의미하는 algos(ἄλγος)의 합성어로 알려져 있다. 즉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어린 시절의 고향과 같은 장소를 떠올리게 될 때 그곳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해도 다시 돌아갈 수 없을 경우, 이와 같은 상황에서 느끼게 되는 인간의 감정이나 정서 등과 관련되어 있는 말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단지 인간의 감정이나 정서뿐만 아니라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와 같은 감정 상태에 놓이게 된 상황에 대해 직시하는 가운데 이에 대한 존재론적 의미에 대해서도 질문하는 작업을 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작가의 작업을 자세히 살펴보다 보면 작가가 작업에서 표현하고 있는 것들, 특히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 속의 장면들은 단지 그리움이나 회한의 정서를 드러내기 위한 수단만이 아니라 인간의 시공간적 한계 상황에 대하여 각성하게 만드는 지점으로 다가오고 있으며 작가는 이를 작업의 중심 주제로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 작가가 그려낸 것들은 어린 시절을 생각나게 하는 것들이고 여기에 등장하는 사물들은 대부분 낡아서 오랜 세월을 느끼도록 만드는 것들이 대부분임을 보게 된다. 그러나 동시에 이 모든 것들은 마치 꿈속의 한 장면이나 초현실주의 작품을 보게 될 때 느끼게 되는 것처럼 낯설게 표현되어 있음을 보게 된다. 작가가 작업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장면들은 현실의 삶에서 경험하고 느껴왔던 기억들과 매우 닮아 있지만 그곳에는 시간과 공간이 초현실적 방식으로 섞여 있고 군데군데 드러나는 시각적 요소들은 현실과 차이가 드러나 보이도록 표현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요소들은 초기에는 그의 작업을 감상하는 이들에게 아주 작고 미묘한 차이로 보일 수도 있겠으나 이는 점차 현실과 닮아 있지만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각성하도록 만드는 지점이자 인간 존재의 경계와 한계를 인식하도록 만드는 지점으로 작동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작가는 인간에 대해, 그리고 존재에 대해 재인식하도록 만드는 계기를 작업 안에 삽입해 놓고자 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작가는 아마도 인간 존재를 재인식하는 방법으로 ‘Virtual Nostalgia’, 즉 가상적 향수, 가상적 그리움이라는 개념을 제시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개인사적 경험에서 기인한 어린 시절의 특정 기억과 관련된 향수가 아니라 인간 존재에게 있어 향수를 유발시키는 상황과 그것의 계기가 되는 지점들을 자신의 작업 가운데 포착해 놓음으로써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 각성하게 되는 지점을 가시화 하고 이에 대한 질문의 지평을 회화 공간 안으로 가져옴으로써 인간 존재에 대해 질문해 보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이때 작가가 보여주고 있는 것들은 현실을 닮아 있으나 현실이 아님을 각성하게 만드는 지점이 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게 된다. 특히 현실이 아닌 유사 현실에서 파생된 정서는 단순히 어떤 구체적 기억에서 기인한 향수가 아니기에 로봇이 인간과 닮아 있을 때 느끼게 되는 언케니 밸리(Uncanny Valley)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불안과 유사한 정서를 연상시키게 될 것이라고 본다. 이는 인간과 인간 아닌 것 사이 혹은 경계에서 인지적 부조화로 인해 일어나는 불쾌감이나 불안함과 연관된 것으로 일컬어지고 있지만 작가가 작업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들은 존재와 부재의 경계에서 현실로 감각하고 인식하게 만드는 여러 감각적 조건들과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작가가 작업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들을 이를 메타인지적 차원에서 인식하게 될 때에는 언케니 벨리에서와 유사한 지점에 이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 감각한다는 것은 외부 세계를 인식하는 토대이고 이때 일정한 감각의 조건이 충족될 때에는 일정한 인식의 지점에 이른 것으로 여겨져 왔기에 유사하게 인식된 것들 가운데에는 현실과 차이가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이를 직시하게 될 때에는 감각하여 인식하게 된 모든 것들에 대해 회의하게 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는 결국 존재로 인식해 왔던 것들에 대해 근본적으로 회의하도록 만듦을 의미하게 된다. 이것은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해 본질적으로 회의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말하는 것이며 바로 이 상황이 인간의 근본적 불안에 대해 목도하도록 만드는 지점이 되는 것이다.
이로부터 다시 노스텔지아(Nostalgia)라는 개념을 재정의 하게 된다면 이는 돌아갈 수 없는 순간에 대한 그리움이나 회한의 정서를 넘어 시공간적 한계 가운데 놓여져 있는 인간 존재에 대해 각성하도록 만드는 존재론적 차원에서의 한계 지점이자 부재의 영역에 대해 대리 호출하는 하나의 개념적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작가는 이를 ‘Virtual Nostalgia’로 바꿔 부르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인간 존재의 한계적 상황을 더욱 극명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개인사에서 기인한 선형적 시간성을 뛰어 넘어 가상성을 근거로 그것과 중첩되어 있는 수많은 인간 존재의 시공간적 좌표의 다층적 분화 가능성을 제시하여 작가는 관객과의 사이 공간에서 서로 만날 수 있는 회화를 층위를 선보이고자 했던 것이다. 작가는 작업에서 어린 시절의 기억과 닮아 보이지만 한번도 경험하지 않은 꿈속이나 동화 속 상상의 영역 가운데 이식되어 있는 가상적 기억들을 회화 작품을 통해 직시해 보게 함으로써 뒤집어 보면 이와 유사한 방식일 수 있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자체에 대하여 보다 깊은 심안으로 바라보도록 만드는 장치를 마련해 주고자 했던 것 같다. 이는 감각으로부터의 환영 혹은 인간의 인지적 해석의 한계성 안에 갇혀있는 상황으로도 해석될 수 있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감각하고 있는 것들을 회화 공간에 연결하고 접붙임을 시도하려 하는 것은 이를 통해서만 존재적 위치를 확인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적 존재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작가는 그래서 대리 기표들을 통해 사라져버리는 것들, 부재의 지점에서 드러나게 되는 존재의 흔적들로부터 그 아이러니한 존재론적 모순성을 드러내면서도 임시적이고 과정적일 수 밖에 없는 감각을 다시 불러올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본다. 그것이 존재 자체를 회의 할 수 밖에 없음에도 존재하는 한 느끼게 되는 체온처럼 바로 그 감각에 근거한 계기들이 현전에 대한 작은 근거라고 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승훈 (미술비평)
김 미 성 Kim MiSung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였다.
갤러리 아트 스페이스 에이치 2024, 갤러리 두 2024, 아트리에 갤러리 2023, 카라스 갤러리 2023, 아트 스페이스(더 스테이 힐링 파크) 2022, 대안 공간눈 2016 등 12회의 개인전과 Unfold(THE J, 화이트 블럭) 2025, Beyond Horizon (BK 갤러리) 2022, 케이 옥션 갤러리 2022, 코코넛 박스 2022, 꼴라보 하우스 도산 2021, 에코락 갤러리 2021 등 60여회의 그룹전에 참여하였다.